아인슈타인 詩
제 4 부 투명 연구
좋은 영화를 보고 오는 밤
오는 밤
눈이 내리고 지바고는 지나치는 전차에서
그녀를 내다본다 나는 지하철에서 그녀를 보고
무슨 말을 할까 하다가 그냥 지나쳐 가고
돌아오는 길은 미끄러웠다 허방이 도처에 깔려서
입을 벌리고 나는 안 빠지려고 헛손질을 하며
지나가는 마차를 불렀다 어디로 갈 것이냐
수많은 세기가 지나고 지나도록 변하는 것은 없으며
나로서 태어난 자들은 저 홀로 깊어 간다는 것일 뿐
나는 내리는 눈을 허허로이 입으로 받아 마시며
산성 눈이면 어쩌냐고 낄낄거리며 말이여
내일은 어느 고도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수세기의 햇볕이 여러 겹 겹친 뜨락에서
수세기의 그를 그들을 만나리라 만나리라
마부여 그대는 그 곳을 아는가 말이여 길이여
이토록 눈이 내리어 우리의 갈 길을 덮어도 가야만 하리
마차는 날듯이 달리고 달렸다 그래 나는 아침까지
밥을 먹다가도 나는 프라하에 있거나
붉은 수수밭을 달리고 있다
사물들은 다 나를 비껴 가는데 나는 왜
그들을 놓지 못할까
아 오늘은 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수박밭에서
수박이 자라는 것과 우주가 팽창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같은 현상인지도 모른다
수박은 자라면서 거대한 우주로 부풀고
씨앗들은 검게 타오르며 별이 되어 서로 멀어지고
아아 터질듯이 터질듯이 우주는 부풀어
무르익는 짙푸름을 밖으로 뿜고 있다
나는 천여 평의 밭에서 뒹굴며 자라는
수천 개의 수박통을 흡족하게 바라본다
수박통 안에서 무수히 자라나는 별들이여
밤이 오면 원두막에서 아이들과 수박을 먹으며
너희들 수박씨를 어둠 속으로 뱉어내면서
나는 밤하늘이 둥글게 자신의 몸을 키우고
터질 듯이 부풀어 무르익어 가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무르익어서 짙푸름을 뿜어내면은
주인은 그 수박을 다른 이들에게 맛있는 열매로
내다 팔리라 이 세상은 그렇게 자라고 자랄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의 바깥에서는 누군가 쟁기를 들고
자신의 수박 밭을 일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도 나처럼 수박씨들이 저 안에서
돌고 있는지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리라
그리고 내년에는 개량종으로 두 배쯤 넓게 심으리라
마음먹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어떤 개인날
모진 비에 강한 바람이 겹쳐서
그의 창문이 날아갔다 언덕 쪽으로
무수한 유리의 파편이 흩어졌고
염소들도 발을 살펴 딛으며 풀을 뜯는다
마당을 찰랑이던 물도 이제는 빠지고
시뻘건 개흙을 맑은 물을 퍼서 씻어낸다
물로서 물의 때를 씻는 일이 신이 나는지
아낙들은 왁자스레 웃으며 펌프질을 한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유리를 사러 나가고
몇몇 바람이 그의 텅빈 창을 들락거리며
책장을 넘기고 그의 옷자락들을 흔들어 본다
언제나 이렇게 문이 열려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야 남의 사생활을 방해해서는 안돼
야 내가 왜 이 창문을 날려버렸는지 알기나 하니
심술이지 뭐, 뭐라고 바람은 시시덕거리다 나간다
그래 모른다 모를 것이다 바람은 그가 이내 오는 것을
그러나 그는 이내 오고 바람이 놀다 간 것을 모른다
그는 유리를 창틀에 맞추고 실리콘을 바른 뒤
끄떡없는지 퉁퉁 두드려보고 손을 마주 비비다
물가에 가서 씻은 뒤 다시 손에 풀물이 들면서
뒷마당에서 풀을 베면서 오후 내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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