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9·11 테러 사건 설명, 음모론 영향

올드코난 2016. 9. 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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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사건은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벌어진 항공기 납치 동시다발 자살 테러로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버지니아 주 알링턴 군의 미국 국방부 펜타곤이 공격받았다. 이 사건이 미국은 물론 세계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정리해 본다.

9·11 테러(September 11 attacks) 사건 설명 및 의미, 음모론과 영향


1. 사건 내용

4대의 민간 항공기를 납치한 이슬람 테러단체에 의해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밝혀진 사건 내용을 사건 당시 미국 현지 시간대별로 정리해 본다.

오전 7시 59분 76명의 승객과 11명의 승무원 그리고 5명의 납치범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 소속 AA11편이 보스턴을 출발해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날아 올랐다.

8시 14분경 AA11편이 5명의 납치범들에 의해 납치되었다. 같은 시간 51명의 승객과 9명의 승무원 그리고 5명의 납치범을 태운 유나이티드 항공의 UA175편이 보스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륙했다.

8시 20분 6명의 승무원과 53명의 승객 그리고 5명의 납치범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의 AA77편이 워싱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출발했다.

08시 26분 30초경 AA11편은 뉴욕으로 항로를 선회했고, 08시 46분 30초경, AA11편이 시속 790km의 속도로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제 1 세계 무역 센터)의 93층과 99층 사이에 충돌했다.

8시 42분 7명의 승무원과 33명의 승객 그리고 4명의 납치범을 태운 유나이티드 항공의 UA93편이 뉴저지주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잠시 뒤인 08시 58분 UA175편이 뉴욕으로 항로를 바꿨다.

09시 03분 02초경, UA175편이 시속 950km의 속도로 남쪽 건물(제 2 세계 무역 센터)의 77층과 85층 사이로 충돌하였다.

09시 37분 46초경 AA77편이 시속 853km의 속도로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 펜타곤의 1층과 3층 사이에 충돌한다.

09시 58분 59초경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10시 03분 11초경 UA93편이 시속 926km의 속도로 피츠버그 동남쪽에 추락하였다.

10시 28분 22초경,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이 완전히 붕괴되고, 이 여파로 인해 47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부속건물인 제 7 세계 무역 센터 빌딩이 오후 5시 20분 33초경 힘없이 주저앉았다. 제7세계 무역 센터의 붕괴 원인은 제 1·2 세계 무역 센터의 붕괴로 철골들의 잔해들이 튕겨나와 제 7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을 타격한 것으로 보인다.


2. 조치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과 충돌한 직후인 09시 29분,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 테러사건을 '미국에 대한 명백한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이어 전국의 정부 건물에 대피령을 내리는 한편, 국제연합(UN), 시어스 타워(현 윌리스 타워), 디즈니랜드 등 주요 건물을 폐쇄하였다. 같은 날 금융시장 폐장 결정을 내린 뒤, 뉴욕과 워싱턴에 해군의 구축함 등 장비를 파견하였다.


3. 테러 결과

이 사건으로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전원 사망, 워싱턴 국방부 청사 사망 또는 실종 125명, 세계무역센터 사망 또는 실종 2,500~3,000명 등 인명 피해만 2800~3500명에 달한다. 경제적인 피해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가치 11억 달러(1조 4300억 원), 테러 응징을 위한 긴급지출안 400억 달러(약 52조 원), 재난극복 연방 원조액 111억 달러(약 12조 원) 외에 큰 손실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미국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말이 말이 나왔다.


4. 용의자

납치당한 4대의 항공기에는 4~5명의 납치범들이 탔을 것으로 추정되고 미국연방수사국 FBI의 조사 결과 범인들은 모하메드 아타 등 19명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로 알려졌다. 이들은 비행기 충돌과 동시에 전원 사망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 조직인 알카에다를 주요 용의자로 보고, 그 밖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산하의 무장조직인 하마스(HAMAS), 이슬람원리주의 기구인 지하드,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다른 이슬람 테러조직들도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5.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이후 이라크를 공격한다. 미국·영국 연합군은 2001년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 주변에 350여 기의 항공 전력을 배치하고, 아프가니스탄 영토에서 자유로운 전투·폭격기를 이용한 공습과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군을 앞세워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켰으며,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함락하였다. 이어 다음달 22일 연합군은 반 탈레반 정권인 과도정부를 수립함으로써 탈레반과의 전쟁을 종결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 전쟁의 목표로 삼았던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조직 알카에다를 뿌리뽑는 데는 실패하였다.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끝내지 않고 이후 중동으로 눈을 돌려 2003년 3월 20일에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20일 만에 완전 함락시키고 새로운 과도정부를 출범시키는 등 대 테러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후 2011년 5월 제로니모 작전의 일환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 후 수장하였다


6. 음모론과 영향

9·11 테러에 대해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미국 국가 권력에 대한 불신과 반미 감정, 반유대 감정 등 때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9·11 테러 자작극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이외 테러를 미국 정부가 미리 알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사건 때의 실수 등을 정부와 군이 은폐하고있다는 등의 의혹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음모론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미국 정부가 제대로 된 조사를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9.11테러로 인기없던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를 올렸고 그 집안과 연관관 군수산업과 석유산업 등에 이득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런 의혹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9.11 테러가 왜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졌어야만 했는가라는 물음에 부시 행정부는 거짓으로 일관했었다. 화학 무기는 없었고, 수많은 사상자만 내고 종결된 이라크 전쟁의 여파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바로 유럽의 난민 사태다. 유럽 난민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중동질서의 파괴가 컸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9.11 테러로 많은 미국인이 희생되었지만, 미국은 더 큰 시련을 중동에 안겨주었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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