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잡을 수 있었다!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

올드코난 2016. 9. 2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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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1991),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1986년~1991년),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1991년)을 3대 미제사건으로 불린다. 이 중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은 1991년 1월 29일 당시 9살 이형호 군이 유괴되어 살해당한 사건으로 2006년 1월 28일 24시에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에 대해 정리해 본다.

3대 미제사건 두 번째 - 잡을 수 있었다!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 설명


1. 사건 발생

앵커 이우실의 아들이며 계모와 함께 살던 이형호 군은 1991년 1월 29일 오후 5시 20분경(혹은 6시쯤)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2. 유괴범의 목소리

이형호 군이 유괴된 그날 밤 서울, 경기 말씨를 쓰는 30대 남자의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이 범인의 협박전화에서 나온 목소리를 분석한 결과 서울·경기 출신의 30대 전후의 남자로 추정되며 목소리와 범행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범인의 특징은 차분하고 냉정한 성격, 고학력자, 키 170cm 내외, 희고 작은 얼굴형에 눈두덩이가 두꺼운 편으로 추정했다. 또 유괴범이 전화통화 때 “저희”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개인이 아닌 공범에 의한 범행으로 추정된다. 불필요한 폭행과 사체유기 등으로 볼 때 단순히 돈만 노린 범행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3. 지능범

사건 당일 밤 11시부터 16일 동안 50여 차례의 전화통화와 10차례의 메모지로 피해자의 부모를 협박했는데 수법이 치밀하고 지능적이었다.

7000만원과 카폰이 있는 차를 요구하고 수시로 장소를 바꾸며 경찰을 따돌리는 등 사전 준비도 치밀했고, 약간의 의심에도 도주를 하는 등 조심성이 매우 많았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이군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는데, 이미 살해된 뒤였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과정은 생략)


4. 검거 실패

2월 14일 오후 피해자의 아버지 이우실에게 올림픽대로 김포공항 방향으로 오다가 서울교에 내려서 다리 아래 정중앙에 돌로 눌러진 메모를 확인하고 지시사항대로 따르라는 말과 함께 마지막이니 신경쓰라는 경고를 한다. 이에 메모를 따라간 곳은 양화대교 남단 한강둔치였고, 도로 바로 옆에 있는 철제박스 위에 돈뭉치를 올려놓으라는 것이 마지막 메모 내용이었다. 당시 철제박스 주변에는 강남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잠복하고 있었고, 피해자의 부는 경찰과 의논한대로 진짜돈 10만원에다가 가짜돈 뭉치를 섞어서 신문지에 포장한 것을 철제박스 위에 올려놓고 돌아갔다.

그러나 형사들이 서로 무전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철제 박스 위치를 혼동했고, 그 사이에 범인이 돈을 가지고 사라져 버렸다. 당시 수사에서는 성문(聲紋) 분석 결과 범인을 1명으로 추정했는데, 이게 범인 검거 실패의 주요 원인이었다.


5. 시신 발견

유괴범은 2월14일 전화를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사건 발생 44일 후인 3월13일 낮 12시 20분경 서울 송파구 잠실대교에서 서쪽으로 약 1.5km떨어진 곳에 위치한 배수로(토끼굴)에서 이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손이 스카프와 나일론 끈으로 묶여 있었다. 코와 입이 테이프로 막혀 사인은 질식사로 밝혀졌다. 부검 결과 위에서 나온 음식물이 유괴 당일 친구집에서 먹은 반찬으로 밝혀져 유괴 직후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군의 몸 곳곳에는 폭행을 당한 흔적도 있었다.


7. 범인은 2명 이상이었다.

200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의 실험 결과 철제박스는 운전석과 반대방향에 있기 때문에 범인 2명 중 1명이 운전을 하고 나머지 1명이 돈을 낚아채야만 당시의 상황이 설명되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다시 한번 정밀 분석한 결과 미세하게 다른 점이 있었기에 범인은 사실상 2명으로 추측했고, 2011년 5월 21일 그것이 알고싶다 800회에서 당시의 사건을 재구성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는데 범인이 최소 3명 이상이라는 것이다. 사건을 주도한 장본인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여기에 동의한다. 범인은 최소 2명이고 3명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8. 경찰 책임이다.

경찰이 유괴범을 잡기 위해 동원된 수사인력 9784명에 배포된 몽타주가 모두 28만장이나 되었다. 여기에 범인의 80여통의 협박 전화가 있었고 녹음된 통화가 40여통, 음성과 필적 감정 740건 등이 있음에도 잡지를 못했다. 여기에 범인이 1명이라고 단정해 검거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을 담당한 강남 경찰서는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데 강남 경찰서는 범인을 검거할 결정적인 기회를 날려 버렸다.

범인이 교보빌딩 앞으로 이군의 아버지 이우실을 불러냈을 때 인근 지하도를 나온 점퍼 차림의 20대 남자가 차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우실이 형사들에게 추적을 요구했는데 노출될 수 있다고 머뭇거리는 사이 범인을 놓치고 만다. 그때 달려들었다면 체포를 할 수 있었다.

은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유괴범이 한일 은행에 돈을 입금 시키라 지시를 하고 범인이 입금된 돈을 찾기 위해 은행에 갔지만 사고신고 계좌라는 문구가 단말기에 뜨자 은행원 직원이 당황하 만다. 이에 범인이 낌새를 채고 그대로 달아나 버린 것이다.

이후 상업은행에서도 은행원이 머뭇거리는 사이 달아나 버렸는데 은행직원들이 사고계자에 망설인 것은 경찰들에게 사전에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은행과 제대로 공조를 했다면 그때 범인은 검거가 되었을 것이다. 잡을 수있었는데, 잡지를 못했다. 그게 문제였다.


9. 영구 미제 사건

이군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공개수사로 전환되고 친척 이모씨가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뚜렷한 물증이 없었다. 당시 은행에는 CCTV가 없어 얼굴도 찍히지 않았다. 메모지나 통장개설신청서에도 지문을 남기지 않았다. 범인을 직접 본 상업은행 직원과 사체가 발견된 인근의 한강둔치 잠실지구 매점 주인 등의 진술에 따라 범인의 몽타주가 만들어져 전국에 지명수배되지만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다.

이군의 아버지는 자식을 잃은 슬픔과 여전히 범인을 잡지 못한 분노로 살아가고 있다. 2007년 영화 ‘그놈 목소리’가 개봉되면서 잠시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영화 말미에 범인의 진짜 목소리를 공개했지만 역시나 범인을 잡지 못했다.


"범인을 만나면 처벌보다도 왜 아들을 죽였는지를 물어보고 싶다."- 이형호의 아버지 이우실(2011년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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