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3대 미제사건 -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설명

올드코난 2016. 9. 2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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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26일 대구에 사는 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나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후 11년6개월 만인 2002년 9월26일 유골로 발견 되었다. 지금까지 범인의 정체도 파악되지 않아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1986년~1991년),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1991년)과 함께 3대 미제사건으로 불린다. 정리해 본다.

3대 미제사건 첫번째 - 공소시효 만료로 끝내 밝혀지지 않은 범인,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Frog Boys, カエル少年事件) 설명


1. 사건발생

5.16 군사쿠데타 이후 중단됐던 지방자치제가 30년만에 부활해 시·군·구 기초의원을 뽑았던 첫 선거였던 1991 기초의원선거로 인해 임시 공휴일이었던 1991년 3월 26일 대구성서초등학교에 다니던 동네 아이 다섯 명은 대구시 달서구 와룡산에 도룡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갔다. 아이들이 와룡산에 오르기 전 인근 마을에 사는 학교 친구와 마을 주민들에게 목격된 것이 마지막이었다. 와룡산으로 간 아이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고 부모들은 경찰서에 실종 사건을 신고하고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아이들을 찾아 헤맨다.


2. 실종 및 사망 어린이 명단

김영규 (1981년생 당시 11세, 4학년) 김종식 (1983년생 당시 9세, 3학년)

박찬인 (1982년생 당시 10세, 3학년) 우철원 (1979년생 당시 13세, 6학년)

조호연 (1980년생 당시 12세, 5학년)


3. 생존자

참고로 하마터면 한명의 희생자가 더 나올뻔했다. 김태룡 (당시 10세, 3학년, 1982년생)은 아침밥을 먹지 못한 상태였고 밥을 먹고 가겠다고 했는데 이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4. 개구리 소년으로 불린 이유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는 말이 개구리 잡으러 간다고 와전돼 초기에 널리 퍼지면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으로 불리어진 것이다.


5. 수사

5명의 어린이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전국민이 안타까운 마음에 수사를 촉구하고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수사본부를 구성해 와룡산 일대를 포함해 전국을 수색하게 한다. 경찰외 각종 사회단체들이 참여했고 기업체들도 제품에 실종 어린이들 사진을 인쇄해 배포하는 등 전국이 개구리소년 찾기에 나섰다.

이때 내건 현상금은 4200만원(당시 집한채 가격)이며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5만명의 수사인력이 투입됐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6. 거짓 제보와 수사 장기화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수많은 거짓 제보와 황당한 예언들이 등장하는데 '외계인 납치설', '북한공작원 유괴설', '불치병 치료용 희생설' 등 온갖 헛소문과 가십성 말들이 나돈다. 1992년 8월 경찰은 한센병 환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들을 유괴해 죽였다는 소문을 믿고 한센병 환자 정착촌을 강압적으로 수사해 한센병 환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고 실종 5년째인 1996년 1월, 다섯 어린이 중 종식군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 암매장했다는 엉터리 범죄 심리학자 전 카이스트 물리심리학 김OO교수의 주장이 제기돼 굴삭기와 곡괭이 등으로 집안 화장실과 부엌 바닥을 파는 소동이 벌어졌지만 아무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이때 누명마저 쓰게된 종식군의 아버지는 2001년 간암으로 숨을 거둔다. 아들을 찾지 못한 종식군의 아버지는 세상을 뜨기 전 “이승에서 못다한 부모의 도리를 저승에서 다하겠다. 먼저 종식이를 만나러 가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한다.


7. 유골 발견

2002년 9월 26일 와룡산에서 도토리를 줍기 위해 주위를 살피던 한 시민이 사람의 뼈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이에 경찰이 수색을 벌이고 네 구의 유골과 신발 다섯 켤레가 대구시 달성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뒤편 500m 떨어진 와룡산 중턱 세방골에서 발견됐다.


8. 타살

유골 발견 초기 경찰은 유골이 뒤엉켜 있었고, 옷을 얼굴에 덮어놓은 상태등을 이유로 5명의 아이들이 와룡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조난당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옷으로 온몸을 덮었을 것이라며 아이들이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해자 부모들과 와룡산 기슭에 거주하는 할머니는 "와룡산은 마을에서 멀지 않은 야산이기 때문에 불빛이 다 보이므로 절대 조난당할 일이 없다."라고 항의하고 부검을 한 결과 부검을 맡은 경북대학교 법의학팀은 명백한 타살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9. 공소시효 만료

개구리 소년이 타살이 입증되고 2004년 3월26일 경북대 병원 영안실에서 이들에 대한 합동 장례식을 치른다. 그리고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수사본부장으로 70여명이 수사에 투입됐지만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2006년 3월에는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1개팀, 성서경찰서 강력팀 등 18명이 사건을 맡았지만 범인을 밝히는데 실패하고 2006년 3월 25일자로 공소 시효가 만료되어 수사가 종결되었다. 이에 피해 소년들의 유족들이 2005년 말부터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소시효 연장·폐지'를 촉구했지만 공소시효 연장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이 사건의 시효 만료 전에 통과되지 못해 개구리 소년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10. 대중매체

사건 발생 당시 전국민의 관심을 가졌고 무사 귀환을 빌었는데, 대중매체 등에서도 개구리소년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들이 만들어 졌다. 1992년 11월 영화 ‘돌아오라 개구리소년’이 제작되었고 2003년 래퍼 MC 스나이퍼는 노래 〈개구리소년〉을 2005년에는 소설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가 출간되었고 2011년는 이 사건을 소재로한 영화 ‘아이들’이 개봉되었다.


11. 현재

대구 달서구 와룡산 셋방골에서 매년 개구리소년들의 실종날인 3월26일 개구리 소년들에 대한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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