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업적과 평가

올드코난 2016. 9. 2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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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년 2월 22일 ~ 1799년 12월 14일) 미국의 초대 대통령(1789년~1797년)으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미국 제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본다.


1.생애 초반

조지 워싱턴은 1732년 2월 22일 버지니아 식민지의 웨스트모얼랜드 카운티의 콜로니얼 비치 인근에서 유복한 농장주인 어거스틴 워싱턴과 그의 두 번째 부인 메리 볼 워싱턴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났다. 어거스틴은 첫 부인 제인 버틀러와의 사이에서 네 명의 아이를 얻었다. 둘은 어려서 죽고 둘은 생존해 조지는 실재로는 셋째였고 나이차가 많았다. 이복형인 맏형 로렌스로부터 군대 이야기를 접하는 등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맏형 로렌스가 결혼한 사람은 페어팩스의 딸로 더군에 조지 워싱턴은 당시 500만 에이커에 달하는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던 토마스 페어팩스의 후원을 받게 되고 측량 기사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때의 경험이 버지니아 식민지의 지형에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훗날 큰 도움이 된다.


2. 결혼

1753년 21세에 버지니아 민병대에 입대하고, 뒤에 영국군 정규군에 편성되어 프랑스 인디언 전쟁에 참전해 싸운다. 참전 후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마운트 버넌 농장으로 돌아가고 이때 대니얼 파크 커스티스의 미망인인 마사 댄드리지 커스티스를 만나게 되고 1759년 결혼한다. 마사는 3,000명이 넘는 노예와 1만 7,000에이커의 땅을 가진 갑부였다.


3. 독립전쟁

미국의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식민지군 사령관으로 취임한다. 실재 전투에서의 공적은 좋은 편이 아니지만 최종적으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4. 초대 대통령

독립 전쟁의 영웅으로 명성을 얻은 조지 워싱턴은 1787년에 버지니아 주 대표가 되고, 2년 후에 치러진 초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만장일치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은 매우 생소한 직함이었다. 대다수 대국민들은 대통령이 무엇인지 이해를 못하고 국왕이라고 생각했다. 조지 워싱턴 자신도 선출된 국왕이라고 생각하며 국왕처럼 말하고 행동하였다. 특히 당시로서는 매우 큰 편인 188cm의 키에 당당한 체구를 가졌기 때문에 위엄도 있었다.


5. 재임시 활동

대통령 조지 워싱턴 자신에 대한 칭호로 국왕들이 스스로 말하는 자기를 3인칭 하는 단어 (그대 같은)를 즐겨 썼고 다른 유럽의 왕들처럼 대접받기를 원해 많은 접견회와 파티를 열었고, 미국 전역을 호화롭게 여행했다. 미국 국민들은 이런 조지 워싱턴을 국왕으로서 환영했다.

이런 조지 워싱턴의 행동은 미국 대통령의 지위를 강하게 만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는 당시 역사상 처음 시작한 대통령직을 구체화한 업적으로도 평가를 받는다.

워싱턴은 해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취하지 않는 정책을 택했고 강력한 중앙 정부를 수립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 부채를 조성하고, 효율적인 세금 제도를 시행했고 국가 은행을 창설했다.


6. 퇴임

1797년 두 번에 걸친 임기가 끝나자 모든 사람들은 그가 사망할 때까지 종신 대통령직이 되기를 원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한다. 3번의 임기를 맡는다면 장기집권을 위한 무서운 정치싸움이 벌어질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조지 워성턴의 2번 임기는 1940년 루즈벨트가 4선을 하기전까지는 반드시 지켜졌던 덕목이었고 루즈벨트 이후는 수정헌법 22조로 3선 출마금지를 명문화한다.

퇴임시 유명한 "고별사"를 발표하고, 오늘날까지도 미국인의 신념에 신성한 사료로 남아 있다.


7. 최후

임기를 마친후 마운트버넌으로 돌아갔고 2년 뒤인 1799년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헨리 리는 장례식에서 워싱턴을 "전쟁에서도 으뜸, 평화에서도 으뜸, 그리고 그의 국민들 마음 속에서도 으뜸"(First in war, first in peace, and first in the hearts of his countrymen)이라 칭송했다.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 의해 군대 계급이 중장에서 국가군통수 대원수로 3계급 진급 및 추서되었다. 역사학자들과 미국인들은 가장 훌륭한 미국 대통령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1달러 지폐에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8. 평가

조지 워싱턴의 최대 업적은 대통령의 임기를 명확히 한 것이다. 왕정 시대 2번의 임기만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권력을 잡은 자는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대부분이며, 조지 워싱턴 재임 당시는 대통령을 왕으로 알던 때였다. 자신이 원했다면 종신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지만, 떠날 때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미국의 대통령 중 역사에 남을 독재자는 단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간혹 비판을 받는 그의 귀족정치와 황제처럼 행동한 부문과 정치를 대중화하지는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이전의 배울 선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중민주주의를 창조해내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고 그의 중요한 업적으로 봐야 한다. 조지 워싱턴에게도 공과 과도 있고, 노예 문제 등 요즘 세대들에게는 비판의 대상도 있지만, 독립과 국가의 기초를 잘 닦았다는 점과 민주주의 상징인 대통령제의 기반을 잘 잡았고 왕이 아닌 평민도 국가의 원수가 될 수 있다는 대중민주주의의 창조자로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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