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미국 제 2대 대통령(존 애덤스(John Adams) 생애 평가

올드코난 2016. 9. 26. 12:48
반응형

존 애덤스(John Adams, 1735년 10월 30일 ~ 1826년 7월 4일)는 미국의 제1대 부통령(1789년-1797년)이며 워싱턴에 이은 제 2대 대통령(1797년-1801년)이다. 미국 건국의 주역 국부 중 한사람이었다. 완공된 백악관에 처음 입주한 대통령이며그의 아들 존 퀸시 애덤스가 6대 미국 대통령을 지내면서 미국 최초의 부자(父子)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애덤스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본다.

미국을 위해 야심을 버린 소신있던 인물, 미국 제 2대 대통령(존 애덤스(John Adams) 생애 평가


1. 초기 생애

존 애덤스는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의 브레인트리(Braintree)라는 도시에서 1735년 10월 30일 아버지 존 애덤스와 어머니 수잔나 애덤스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 덕분에 어려서부터 교육 혜택을 많이 받게 되는데 하버드 대학교 졸업후 1758년 23세에 변호사가 되는데, 당시에도 매우 일이었다. 영국 신민지 시대였기에 주로 영국 법과 역사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 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다.


2. 정치활동

1765년 영국이 모든 상품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인지조례법 반대투쟁으로 정치에 뛰어든다. 하지만 5년 뒤에 보스턴 학살에 연관된 영국군 장교를 변호하기도 했는데, 변호사라는 직업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분명히 있었다.


3. 독립 운동

존 애덤스는 토머스 제퍼슨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한다. 1780년 자신의 출신주인 매사추세츠주의 헌법초안을 만들었고 미국 독립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파리에서 영국과 독립협상을 벌이게 되었을 때 벤저민 프랭클린, 존 제이와 함께 협상대표로 참가해 1783년 미국 독립을 영국으로부터 승인 받은 주역이었다. 이런 공로로 1789년 미국 첫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득표수 2위를 기록하며 미합중국 초대 부통령이 될 수 있었다.


4. 대통령 임기 중

조지 워싱턴이 퇴임을 결정하면서 애덤스는 1797년 두 번째 대통령으로 취임하는데 당시에는 두 번째로 득표수가 많은 후보가 부통령으로 임명되었기에 애덤스의 친구이며 정적인 토머스 제퍼슨이 부통령이 되는데 제퍼슨은 임기 4년 동안 애덤스의 정책을 반대하고 괴롭혀 애덤스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2대 대통령 애덤스의 당면한 문제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의 갈등이었다. 신생국 미국은 유럽국가들에 비해 허약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경쟁하는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미국을 자국의 보호령으로 만들려 했고, 이중 영국은 무력까지 동원해 미국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에 애덤스는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에 3명의 비밀특사를 보내는데 당시 프랑스 외무장관 탈레랑이 거액의 뇌물을 요구한 일이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은 분노했다. 영국을 견제하려다 오히려 프랑스와 사이가 틀어지고

반 프랑스 연방주의자들의 응징 요구에 애덤스는 선전포고도 없이 프랑스와 전쟁(1798년 ~ 1800년)을 벌인다. 이때 프랑스 등 외국에 협조적인 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외국인법에 서명했는데 이 법은 실질적으로는 국민들의 입과 귀를 막는 비민주적인 법으로 제퍼슨 등의 반연방주의자들의 반발이 거세어지고 결국 명분도 실리도 없이 프랑스와 휴전을 하게 된다. 이로인해 지지세력들에게도 외면당한 애덤스는 1800년 재선에 실패하고 정적 제퍼슨이 후임 대통령이 된다.


5. 최후

퇴임후 고향 브레인트리로 돌아와 세상을 떠날 때까지 25년간 저술활동에 전념한다.. 오랜 동지이자 정적이기도 했던 제퍼슨과 마지막엔 화해를 하게 되었다. 만년에는 우울증을 앓기도 했으며 1826년 7월 4일 미국이 독립한 지 50년이 되는 해, 존 애덤스는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나는데 제퍼슨이 몇시간 일찍 죽었다. 사망 당시 애덤스의 나이 91세였다.


6. 평가

애덤스는 열렬한 연방주의자였고 제퍼슨은 철저한 반연방주의 세력의 지도자였다. 서로 다른 이념 때문에 이들의 대립은 어쩔수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의 다툼은 사적인 이익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애덤스는 자신의 야망을 많이 포기하면서까지 미국을 위해 헌신했고, 그런 점이 대통령 임기 중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사후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애덤스는 대통령이나 지도자 보다는 학자 혹은 철학자나 참모로서는 능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오점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그의 소신있었던 정치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배울점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