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핵전쟁을 막은 쿠바 미사일 위기 (Cuban missile crisis) 사건 설명과 의미

올드코난 2016. 8. 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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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미사일 위기(1962년 10월 14일~10월 28일)는 1962년 10월 14일, 미국측의 첩보기 록히드 U-2에 의해 쿠바에서 건설중이던 소련 미사일 기지의 사진과, 건설현장으로 부품을 운반하던 선박의 사진이 촬영되면서 시작되어 전쟁 위기까지 갔던 냉전시대 중요한 사건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카리브 해 위기, 쿠바에서는 10월 위기라고 부른다. 간략히 정리해 본다.

핵전쟁을 막은 쿠바 미사일 위기 (Cuban missile crisis) 사건 설명과 의미


1.배경

1960년 5월 소련 무기로 쿠바를 방위한다는 약속을 했던 당시 소련 서기장 흐루시초프는 쿠바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설치한다 해도 미국이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흐루시초프 서기장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점도 있었다. 1961년 베를린 위기로 인기가 떨어지고 있던 흐루쇼프는 소련 내에서는 국내 기관 재배치 문제와 22차 소련공산당 당대회를 통해 지위가 흔들리게 된다. 여기에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이 독자노선을 걸으며 소련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는 등 공산국가들의 종주국 소련의 위상이 흔들리고 강대국 미국과의 대립에서 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소련의 흐루쇼프는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미국을 견제하고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쿠바에 장거리 미사일 기지 설치를 비밀리에 추진하게 된다.


2. 위기

1962년 7월 미국은 소련이 쿠바로 미사일을 수송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8월 29일경 쿠바 상공을 비행하는 미국의 U-2 정찰기를 통해 쿠바에 새로운 군기지가 건설되고 있고 소련 기술자들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10월 14일 발사 기지에 탄도 미사일이 배치된 사실이 보고되면서 이날부터 공식적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된다.

미국은 소년의 쿠바 미사일 기지의 건설을 강행하면 이를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것이며,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는 공식성명을 발표한다. 이에 전 세계는 3차 세계대전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학교와 가정에서 대피훈련과 방공호를 파는 작업등이 실시된다.


3. 검역(격리)

미국은 즉각적으로 쿠바에 쳐들어갈 것인지 등의 여부를 고심하고 당시 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쿠바 해상을 '격리(검역)' 조치 하기로 결정한다. 봉쇄라는 용어를 쓰지 않은 것은 쿠바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인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매우 신중한 표현이었다. 10월 22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격리 조치를 발표했고 다음날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OAS)가 이를 승인했다.


4. 종식

케네디는 미군이 소련 함정이 쿠바로 이송하려고 하는 무기 관련 자재를 모두 압수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에 소련 선박들은 격리 지역에 들어가지 않았다. 소련도 미국과의 대립까지는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케네디와 흐루시초프 간에 메시지가 교환되고 10월 28일 흐루시초프는 쿠바의 무기 건설기지 작업의 중단과 쿠바에 배치된 미사일은 소련으로 회수하겠다는 사실을 케네디에게 통보한다. 그리고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중지하는 대가로 터키에 있던 미국 측의 ICBM(대륙간 탄도탄) 기지를 철수시킨다는 조건하에 쿠바 미사일 위기는 종식된다.


5. 결과

흐루시초프는 그 미사일이 지대지 중거리 공격용 미사일임을 시인했다. 그는 국제연합(UN) 사찰단이 쿠바 현지 시찰을 통해 그의 통보를 확인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찰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미국은 U-2 정찰기를 통해 사찰을 실시한다. 그리고 11월 20일 공식적으로 격리 조치를 해제했다.

소련은 수 개월 내에 쿠바의 모든 미사일을 철수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미국은 터키, 그 밖의 중동국가에 설치된 ICBM기지를 은밀히 제거한다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은 앞으로 쿠바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데에 동의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위기를 벗어났다면, 실리는 소련이 챙긴 것으로 평가된다.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지 않은 대가로 많은 것을 얻었기에 외교적으로 소련이 조금 더 유리했다고 판단해 본다.

6. 올드코난 생각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의 본질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냉전시대 공산국가는 민주국가를, 민주국가는 공산국가를 적대시 했던 당시 서로에 대한 증오 못지 않게, 자신이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미국의 바로 코 앞인 쿠바에 핵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겠다는데 미국이 가만 있을 수가 있었겠는가. 당시 미국 정부가 쿠바를 공격할 수도 있을 정도의 군사력도 있는 국가지만 결국 외교적으로 해결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외교는 평화를 전재로 타협과 양보를 하고 얻을 것은 얻는 당연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상대방을 자극하고 얻는 것은 없고 국민들에게 재산상의 피해와 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50년전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외교의 중요성으로 이는 박근혜 정부가 생각해 봐야할 과제인 것이다.


7.대중매체

이 사건을 다룬 책이나 영화등이 많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2001년 개봉한 영화 D-13(Thirteen Days)이다. 케빈 코스트너가 영화 JFK에 이어 출연했는데,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다. 책으로는 2008년 출간한 마이클 돕스(Michael Dobbs)가 쓴 0시 1분 전(One Minute to Midnight)를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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