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먼로주의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설명

올드코난 2016. 10. 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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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5번째 대통령(재임 1817~25)이며, 아메리카 대륙에 어떤 나라도 간섭하지 말 것을 제창한 먼로 선언으로 유명한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1758년 4월 28일 ~ 1831년 7월 4일)에 대해 정리해 본다.

먼로주의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설명


1. 생애 초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1758년 4월 28일 ~ 1831년 7월 4일)는 버지니아 식민지 웨스트모어랜드에서 4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스펜스 먼로 대령은 스코틀랜드 출신이고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웨일스 출신으로 미국 버지니아로 이주해온 이민자였다. 12세가 될 때까지 가정교사에게 배웠고 16세에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에 입학한다.


2.독립전쟁

17세에 미국 독립 전쟁이 일어나면서 군대에 입대하고 18세에 먼로는 중위로 임관되었고 트렌턴 전투에서 어깨에 큰 부상을 당했지만 이 일로 전쟁 영웅이 된다.

1778년 20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먼로는 중령으로 진급되어 버지니아에 군대를 모집하러 보내졌지만 모집은 실패하지만 당시 버지니아 주지사 토머스 제퍼슨과 인연이 닿으면서 이후 먼로는 제퍼슨에게 법률을 공부하며 정치적 제자이며 평생 친구가 된다.


3. 정치활동

1782년 버지니아 의회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도을 하는데 이듬해 먼로는 아메리카 식민지 동맹 의회에 선출되어 3년 동안 근무하고 1794년, 36세에 프랑스 대사로 임명된다. 이기간 프랑스에 매료되어 친프랑스적인 행동을 보이자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겠다는 당시 워싱턴 행정부의 정책과 어긋낫다며 본국으로 소환되고 만다. 그리고 워싱턴을 포함한 연방주의자들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이후 버지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어 때를 기다렸고, 1803년 제퍼슨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자 중앙정부로 복귀하고, 1808년에는 대통령 선서 후보 지명전에서 제임스 매디슨과 제임스 먼로라는 ‘제임스M’이라는 대결에서 매디슨이 승리를 하게 되는데, 정치적 동지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멀어지는 듯 했지만, 토마스 제퍼슨의 잘 중재를 해주어 곧 회복한다. 이후 대통령이 된 제임스 매디슨이 제임스 먼로를 국무장관에 임명해 주고, 1812년 미영전쟁 당시에는 국방장관을 겸직한다. 이후 1816년 먼로는 매디슨의 뒤를 잇는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연방주의자였던 루퍼트 킹을 누르고 제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게 된다.


4.먼로 독트린

전임자 제임스 매디슨 시기에 발생했던 미영전쟁 이후 미국은 민족주의가 거세지고 당시 세계 최강 영국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며 하나된 미국으로 단결하자는 분위기가 넘칠 시기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먼로는 연임에 성공한다.

1820년대에는 남아메리가 대륙에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던 때였다. 이에 스페인이 무력으로 진압을 하게 되고 영국은 미국에서 손을 잡고 스페인을 몰아내자 제안하지만 먼로는 거절한다. 그리고 유명한 먼로 독트린을 발표한다. 1823년 12월 의회 신년 메시지로 발표한 먼로 독트린의 주요 내용은 유럽의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 건설을 해서도 안되며 대륙의 문제에 개입하지도 말라는 경고였다. 이 선언은 이후 미국의 팽창주의로 가게 되는 근거가 되었고, 아메리카 대륙은 더 이상 유럽과의 종속 관계가 아닌 대등한 국가라는 주장으로 남 아메리카 대륙의 수 많은 스페인의 식민지 국가의 독립을 정당화시켜 주기도 한 중요한 선언이었다.


5. 최후

1825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먼로는 1831년 7월 4일 뉴욕에서 사망했는데, 그의 말년은 초라하고 가난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존 퀸시 애덤스가 적었는데, 생전에 빚을 아주 많이 졌기때문이었다. 퇴임시 당시 돈으로 7만5천달라라는 거액의 빚을 지면서 매년 연금이 2만5천달러이지만 빚에 허덕이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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