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부통령 출신 첫 승계 대통령, 제 10대 미국 대통령 존 타일러(John Tyler) 평가

올드코난 2016. 12. 1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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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대 대통령 윌리엄 헨리 해리슨(William Henry Harrison)이 취임 한달만에 사망한다. 그리고 부통령이었던 존 타일러(1841년 4월 4일 (승계) ~ 1845년 3월 4일)가 대통령 직을 계승한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부통령이 대통령 직을 승계했고, 임기중 처음으로 결혼(재혼)을 한 존 타일러에 대해 정리해 본다.

부통령 출신 첫 승계 대통령, 제 10대 미국 대통령 존 타일러(John Tyler) 평가


1. 개요

존 타일러(John Tyler, 1790년 3월 29일 ~ 1862년 1월 18일)는 미국의 10번째 대통령(1841~45)으로 미국 독립 선언 이후 태어난 두 번째 대통령이고, 전임 대통령이 임기중에 사망함으로써 중도에 대통령직을 승계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참고로 해리스은 68세 최고령 대통령이었고 존 타일러는 이때까지만 해도 최연소였던 51세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그리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양당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인물이다.


2. 어린 시절

존 타일러는 1790년 3월 29일 버지니아 주 찰스 시티 근처에 있는 그린웨이 사유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존 1세는 몇 차례의 주지사를 지냈고, 버지니아 연방 하원의 연설자와 재판관을 지내기도 했다. 아버지는 존을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교에 보냈고 어린 타일러는 열심히 공부했다. 17세에 졸업하고 아버지 아래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1809년 버지니아 법정에 채용되었다.


3. 정치인

존 타일러는 21세에 버지니아 연방 하원 선거에 승리를 거두었다. 1812년 전쟁 중에 1813년 여름에 지원병의 대위가 되었다 사임하고 1816년 미국 하원에 당선된다.

1821년 1월 건강 문제로 하원을 사임하고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교의 총장을 지내다 1825년부터 1827년까지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냈다. 1827년 미국 상원에 선출된다. 타일러는 잭슨의 정책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고 이후 같은 고향 출신인 해리슨과 손을 받은 타일러의 휘그당은 마틴 밴 뷰런 대통령을 누르고 1941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한다.


4. 대통령 승계

그런데 9대 대통령 해리슨 대통령이 취임 한달만에 사망하자, 타일러는 1841년 4월 6일 대통령 직을 승계하게 되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일로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한다. 가장 먼저 직면한 문제는 대통령 직을 승계하는 것인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부통령 신분인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었다. 이에 존 타일러는 자신이 해리슨의 뒤를 이은 미국 대통령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대통령이 사망하면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한 것이다.


5. 재혼

그리고 대통령 승계가 결정되고 얼마 되지 않아 첫 부인 레티샤가 1842년 9월 10일 사망한다. 이에 타일러의 며느리 프리실라 쿠퍼 타일러가 1844년 봄까지 영부인 대행을 하다 1844년 6월 26일 뉴욕에서 전 뉴욕 주 상원 데이비드 가드너의 딸 줄리아와 재혼하고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결혼한 첫 대통령이 된다.

문제는 재혼한 새 신부 줄리아 가더너의 나이가 24세였다. 나이 차이가 30살이나 난 것으로 이로 인해 당시에도 많은 비판과 비웃음을 받았고 여기에 과도한 결혼 비용에 대해서도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이들 부부는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첫부인의 자녀들까지 합치면 모두 열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역대 가장 많은 자식을 둔 대통령 중 하나.


6. 대통령 재임기간

존 타일러는 대통령에 취임후 자신의 당이 휘그당과도 마찰이 심해 결국 휘그당과도 결별하면서 당적이 없는 무당파 대통령 신분이 되고 만다. 당과 의회에서 버림받고 경제마저 나빠지자 존 타일러는 스스로 재선을 포기하고 임기를 마치게 된다.

임기 기간은 세계는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접어들던 시대였다. 영국은 이미 아편전쟁을 벌여 중국 침략을 시작하고, 미국은 해군을 정비하고 중국에 진출해 1844년 망하 조약을 체결하는데, 이때 미국은 내부 사정이 매우 복잡한 관계로 중국을 침략할 여력이 되지 못해 영국 등에 비해서는 우호적이었다. 이런 사정을 모른 중국은 미국을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나은 국가로 여기게 되지만 미국은 중국을 약탈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 조선도 넘보려다 이득이 안될 것 같아 포기를 했을 뿐이었다. 임기중 텍사스 합병 등이 있었다.


7. 퇴임

휘그당과 민주당 모두에게서 외면을 받은 타일러는 퇴임후 남부 버지니아 주 찰스 시티 근처에 있는 자신의 사유지 셔우드 포리스트에서 남북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조용히 산다. 존 타일러는 노예제 지지자로 1960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미국은 노예제 문제로 남부와 북부로 나뉘고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때 존 타일러는 1861년 2월 리치먼드 평화전당대회 의장에 선출되어 링컨을 찾아가 노예제 확대를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이에 타일러는 연방에서 남부가 탈퇴하는 것을 지지하고 그해 1861년 11월 남부동맹 하원 의장에 선출되지만 얼마 안가 1862년 1월 18일 리치먼드에서 72세로 사망한다.


8. 평가

금수저로 태어나서인지, 자만심이 강했던 것 같다. 같은 정당과도 타협을 잘 못했고, 노예제를 지지했다는 점과 과시욕과 사치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인기 있는 대통령이 아니었으며, 객관적으로 봐도 지도자 감은 아니었다. 정치인으로서 인간적으로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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