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사건

세월호 사건 당일 304명 이후 5명과 한 명 모두 310명이 세상을 떠났다.

올드코난 2017. 1. 17. 12:40
반응형

문득 생각나는게 있다. 어느순간부터 세월호 희생자는 304명으로 고정되어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세월호에서 사망한 분이 304명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후에도 몇 분이 더 돌아가셨다. 이분들 역시 세월호 희생자분들라 생각해 보며 정리해 본다.


1. 강민규 교감 선생님

4월 18일 오후 4시 5분 경 안산 단원고등학교 강민규 교감이 전남 진도체육관 뒤편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강민규 교감은 수학여행 인솔자였다. 지갑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이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달라. 내가 수학여행을 추진했다, 시신은 화장한 뒤 사고 해역에 뿌려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학생들을 남겨두고 구조된 것에 대해 죄책감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4월 16일부터 단 2일동안 아이들보다 조금 더 사신게 괴로우셨던 것이다. 강민규 교감 역시 피해자로 봐야 할 것이다.


2. 민간잠수사 이광욱 씨

5월 6일,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 중이던 민간잠수사 이광욱씨는 새벽 6시께 유속이 약해지는 정조시간에 맞춰 사고 해역에서 선체 수색작업을 벌이던 중, 5분만에 교신이 끊겨 다른 잠수부들에 의해 구조됐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헬기로 목포 한국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


3. 민간잠수사 이 모씨

5월 30일 선체 절단작업에 투입된 민간잠수사 이 모씨는 4층 선미 외판 절개를 하기 위해 이날 오후 1시 50분께 입수했다. 2시 20분께 이씨가 작업을 하던 부근에서 충격음이 들렸고 이씨는 얼굴 등에 피를 흘린 채 다른 잠수사에 의해 20여 분만이 2시 40분께 구조됐고 현장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인근에 있던 헬기에 의해 목포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 등을 받았지만 숨지고 말았다.


4. 민간잠수사 김관홍

김관홍 잠수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에 앞장서며 세월호 의인으로 불렸었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으로 잠수병이 생겨 잠수부를 은퇴한 뒤 낮에는 비닐하우스에서 꽃을 키우고,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는 등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렸했었다. 4·13 총선 때는 박주민 의원의 후보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문회 이후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던 김관홍 잠수사는 2016년 6월 17일 거주하던 경기 고양시의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가 남긴 말은 “뒷일을 부탁합니다.”였다.


5. 김OO 경위

7월 5일 오전 9시 58분경 진도군 군내면 신기리 무조리선착장 앞 해상에서 진도경찰서 소속 김모 경위의 시신이 물에 떠 있는 것을 수색에 나선 어민이 발견에 경찰에 신고했다. 김OO 경위는 2014년 6월 26일 오후 9시 26분께 진도군 진도읍 진도대교에서 투신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참사 이후 투신 전까지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지원업무를 해 왔고 업무 피로와 승진 등의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알려졌다.


이상 5분은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세상을 떠난 분들로 이 분들 역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라고 생각해 본다. 이 분들 중에서 고 김관홍 잠수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세월호 의인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족도 아니고, 구조작업을 하던 사람은 아니지만 어떤 50대 남성의 자살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소개해 본다. 5월 30일 오전 4시 57분께 화랑유원지 내 주차장에서 A씨가 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지나가던 시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은 아니며 바지 뒷주머니에서 발견된 편지지 1장 분량의 유서에는 ‘세월호로 숨진 학생들을 추모한다. 어른이어서 미안하다. 지갑에 든 돈(70여만원)을 유족들을 위한 성금으로 써달라. 시신은 기증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분의 죽음은 대한민국 5천만 국민들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 큰 슬픔을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 생각해 본다.


정리해 보면, 세월호 참사는 당일 304명이 희생되었고, 이후 5명이 세월호와 관련해 목숨을 잃었으며 1명의 국민이 슬픔으로 죽었으니 모두 310명이 죽었다. 여기에 5천만 국민 대다수가 슬퍼하고 아파했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아직 9명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고, 3번째 겨울이 되었지만, 박근혜를 포함한 사건 책임자들은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현재 진행중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