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미국 제 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William Howard Taft) 평가

올드코난 2017. 1. 3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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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William Howard Taft, 1857년 9월 15일 ~ 1930년 3월 8일)는 미국의 27대 대통령(1909~1913)으로 제10대 연방 대법원장을 지낸 미국 역사상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장을 모두 지낸 유일한 인물. 전임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당선후 처음에는 혁신 정책을 썼으나, 점점 보수적인 정책으로 바꾸어 강경 외교 정책인 “달러 외교”를 쓰다 지지를 잃어 총선거에서 패하였다. 역대 가장 뚱뚱한 175kg의 거구였던 태프트에 대해 알아 보자.


1. 초기 생애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앨폰소 태프트와 둘째 부인 루이즈 마리아 토리 태프트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상은 1600년대 영국에서 건너온 이래 매사추세츠 주와 버몬트 주에서 살아왔다. 어린 시절 윌리엄은 몸집이 크고 살결이 희어 "덩치 큰 미련둥이"라 불리었다. 2명의 이복형들 2명의 동생과 1명의 누이동생과 친하게 지냈다. 13세에 신시내티 우드워드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17세 때에 예일 대학교에 입학해 1878년 2위로 졸업했고 신시네티 로스쿨을 졸업하기전에 변호사 자격증을 먼저 취득한 공부벌레지만 명석한 인물은 아니었다. 전형적인 성적만 좋은 엘리트였던 셈.


2. 정치

정치에 임문한후 주립재판관, 법무국장, 연방판사가 되고 미국의 식민지가 된 필리핀 총독으로 필리핀의 도로와 항구 건설, 토지 개혁, 학교 설립 등 주요한 일을 해낸다. 그리고 전쟁장관에도 임명되어 파나마 운하 건설 감독과 친미정부 설립 등의 일과 러일 전쟁을 종식시킨 포츠머스 강화 조약 협상에도 관여한다. 1905년에는 특사로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기도 했다. 이때만해도 태프트는 루즈벨트와 뜻을 같이하는 충실한 보좌관이었고 친구였다. 루즈벨트가 그를 후계자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3. 대통령

1908년 루즈벨트는 출마를 할수 있었지만 포기하고 대신 태프트를 지지한다. 이에 힘입어 공화당 후보 태프트는 선거인단 321명을 얻어 162명의 민주당 브라이언을 누르고 승리를 거두며 27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는 순간부터 태프트는 루즈벨트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리더십의 부재와 잘못된 인사관리에 있다. 힘있는 몇몇 정치인들에게 끌려다녔고, 무능하거나 부패한 장관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등 태프트는 관료 시절의 유능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루즈벨트가 태프트에 분노한 것도 정책 노선이 달라졌다는 점 보다는 대통령으로 소신도 능력도 없음에 부끄럽고 화가 났던 것이다.

이에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출마하지만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패해 태프트가 다시 대통령 후보가 되지만 루즈벨트는 이에 불복 진보당을 창당해 대통령에 출마를 한다. 공화당의 분열로 민주당 후보 윌슨은 435석, 루스벨트 88석 태프트는 8석을 얻으며 윌슨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만다.


4. 연방 대법원장

1913년 3월 백악관을 떠난 후, 태프트는 예일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1921년 워런 G. 하딩 대통령은 태프트를 미국 연방 대법원장으로 임명한다. 대통령과 대법원장 직을 거친 최초이며 현재까지 유일한 사례였다. 그리고 연방 대법원장으로서 태프트는 대통령이었을때와는 달리 매우 유능했고 진보적인 판결 또한 많이 내렸다고 한다.


5. 말년

건강의 악화와 심장 발작 등으로 1930년 2월 3일 퇴직했고 한 달후인 1930년 3월 8일 사망했다. 알링턴 국립 묘지에 안장되었는데 훗날 존 F. 케네디도 그곳에 안장된다.


6.평가

밝은 성격에 선한 마음을 가졌다는 말도 있지만 생각이 깊거나 명석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야심이 없다면서 다양한 고위 관직에 올랐고 정치가 싫다면서 평생 정치인으로 살았던 위선적인 면이 있고 관운은 있던 사람으로 대통령 선거 외에는 모두 임명된 직함으로 선출직인 대통령 선거 역시 한번만에 당선된 사람이었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무능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연방 대법원장으로서는 훌륭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점들을 감안해 보면, 지시를 받는 참모나 정해진 틀 안에서 일을 해내는 관료형 인간이 아니었나 생갹해 본다. 창의적이고 융통성 등은 부족해 지도자로서는 역량이 부족했다 여겨진다.


7. 뒷이야기

태프트는 몸무게가 175kg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뚱뚱했는데 필리핀에서 식민지 조사를 나갔을 당시 말을 얻어 탔는데 엘리후 루트 장관에게 보내는 보고 전보에 그 내용을 넣었다. 그랬던니 엘리후 루트 장관에게서 온 답장에 〈그 말은 괜찮소?〉라는 말이 들었을 정도. 또 목욕을 하다가 몸이 욕조에 끼여 나올 수가 없던 일이 있어 3명이 들어갈수 있는 특수 욕조(210cm x 120cm)가 제작되었다고 전한다. 부인이 다이어트를 강요해 몰래 음식을 먹기 위해 백악관을 빠져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게 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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