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노동절의 유래 1886년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 설명

올드코난 2017. 1. 2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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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5월 4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 시의 헤이마켓 광장에서 발생한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 또는 헤이마켓 폭동(Haymarket riot)은 미국 시카고에서 경찰과 그에 항의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벌어진 폭력적인 충돌사건이다. 정리해 본다.


1. 사건 전 상황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는 8만 명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미시건 거리에서 파업 집회를 열었다. 이들이 집회를 연 이유는 장시간 노동에 대항하여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886년 5월 3일 매코믹수확기회사 파업은 시카고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투쟁적인 노동조합원들이 하루 8시간노동제 확보운동의 일환으로 벌인 것이었다. 이 파업에 경찰이 개입하면서 1명이 죽고 여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폭력사태가 일어나자 파업자들 중 과격파들은 5월 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경찰의 폭력성에 항의하는 군중집회를 열었는데 이때만해도 전날 경찰에게 살해당한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파업 참여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집회로 평화적으로 치러지고 있었다.


2. 사건 발생

그런데 경찰이 파업 근로자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누군가(여전히 미상) 다이너마이트를 경찰에게 던져 폭발이 일어나고 이에 놀란 경찰이 발포하면서 유혈 사태가 발생하면서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시카고 데일리 뉴스는 이들을 공산주의자 취급했으나 당시 미국 노동자들의 노동 운동은 장시간 노동에서 착취를 당하던 상황에서 사람답게 살고자 한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이었다.


3. 피해 상황

경찰 사망자는 7명 부상 60명이었고, 시민 사망자 4명, 부상자 70명 이상, 연행자 100명 이상이었다.

4. 사건처리

오거스트 스파이스를 비롯 7명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신원불명의 살인자와 공모했거나 그를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살인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들 중 누가 폭탄을 던졌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일곱 명에게는 사형, 나머지 한 명에게는 징역 15년이 선고되었다. 헤이마켓의 피의자 아나키스트 어거스트 스파이스(August Spies)는 재판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죽인다고 노동운동을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궁핍과 고통 속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해방을 고대하는 수백만 임금 노예의 노동운동을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릴 처형하라. 당신들은 지금 불꽃 하나를 밟아 끄고 있지만, 어디서든 불꽃은 다시 피어오를 것이다. 이것은 지하에서 타오르는 불길이다. 당신들이 밟고 있는 대지 자체가 불타올라,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사형수 중 두 명은 일리노이 주지사 리처드 오글스비가 종신형으로 감형해 주었고, 한 명은 교수대로 끌려가기 전에 자살했다. 나머지 네 명은 1887년 11월 1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남은 3명은 1893년 신임 일리노이 주지사 존 피터 올트겔드가 사면해 주었고 재판을 비난했는데 이로 인해 보수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노동계에서는 찬사를 받았다.


5. 사건의 의미

헤이마켓 사건은 국제노동절의 유래가 된 중요 사건이다.

당시 미국 노동 운동은 자본가, 정부, 자본가와 결탁한 보수언론들의 탄압과 색깔론 그리고 왜곡 보도로 폭도나 범죄자처럼 묘사가 되었지만 당시 노동자들은 엄청난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했던 것은 근로자들을 최소한 사람으로 대접해 달라는 부탁이었던 것이다.

헤이마켓 사건 발생 장소는 1992년 사적지(Landmark)로 지정되었고, 2004년 조각상이 설치되었다. 억울하게 사형당한 이들의 무덤에 헤이마켓 순교자 기념물이 세워졌고 1997년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노동연구가 William J. Adelman 교수는 세계 역사상 시카고 헤이마켓 사건보다 노동사에 더 큰 영향을 미친 단일 사건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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