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미국

미국 제국주의 시작, 미국 제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 (William McKinley, Jr.) 평가

올드코난 2017. 1. 2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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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Jr., 1843년 1월 29일~1901년 9월 14일)는 미국의 25대(1897년~1901년) 대통령이다. 남북 전쟁 참전 마지막 대통령이고, 19세기 마지막 그리고 20세기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그랜트이후 첫 재선에 성공한 매킨리에 대해 설명해 본다.


1. 초기 생애

윌리엄 매킨리는 1843년 1월 29일 오하이오 주 나일스에서 9명의 자식 중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 윌리엄과 이다 섹스턴 매킨리는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출신으로 종교는 감리교였다. 폴란드 중학교를 졸업하고 얼레게니 대학(Allegheny College)에 진학했지만 질병으로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얼레게니에 있는 동안, 시그마 알파 엡실론 사교 클럽에 가입했다. 1861년 6월 23일 18살에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병사로 입대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소위로 임관하고 헤이스 대령(훗날 19대 대통령)의 부관이 되고 1865년 22살에 소령이 된다. 그만큼 유능한 군인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올버니 로스쿨(Albany Law School)을 졸업해 변호사가 된다. 부인은 간질이 있었는데, 평생을 보살핀 자상한 남편이다.


2. 정치

1877년 하원 의원이 되고, 1890년 매킨리 관세법을 제안하여 가결시켰다. 그러나 그의 제안으로 채택된 매킨리 관세법은 높은 관세로 미국 상품을 보호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경제위기를 가중시켰고 뒷날에는 1893년의 대공황과 뒤이은 경제 불황의 원인이 되었다는 비난을 받는다.


3. 대통령

1896년 공화당 후보로 나선 매킨리는 기업들의 엄청난 후원을 받고 많은 돈을 쓴 결과 대통령에 당선된다. 취임후 금본위제도와 관세장벽을 높였다. 외교적으로는 전쟁에 반대하려 했지만 아바나항에서 미국 전투함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기에는 전쟁을 통해 경제발전을 일으키려는 의도 또한 있었다. 1898년 미국-에스파냐 전쟁은 5개월만에 미국이 승리를 거두고 필리핀과 푸에르토리코, 괌을 얻었고 쿠바 독립 성취 등의 성과를 올렸다. 이로인해 미국이 국제적인 위상도 높아졌고, 대통령의 지위와 권위 또한 높아진다. 이때부터 미국의 제국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매킨리는 1900년 재선에 성공한다.


4. 암살

하지만 재선 다음해인 1901년 9월 5일부터 버펄로에서 열린 전미 박람회에 참석하는데 다음날 9월 6일에 무정부주의자 레온 촐고츠이 쏜 권총에 맞게 된다. 첫 번째 탄환은 어깨를 스쳤지만 두 번째 탄환은 위, 대장, 콩팥을 지나 근육에 박혔다. 이 두 번째 탄환은 당시 의학 기술로 발견하기 어려웠고, 담당 의사들은 탄환을 무리하게 찾는 것이 생명에 해가 될 수 있고 대통령이 앞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서 그 탄환을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매킨리 대통령은 점차 회복해 갔고, 9월 11일에는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을 수준이 되었지만 오후가 되자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고, 9월 14일 오전 2시 15분 상처 부위의 괴저로 사망했다. 향년 58세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3번째로 암살로 인해 사망했다.


5. 평가

매킨리는 재임시기 미국-에스파냐 전쟁의 승리와 하와이 합병, 필리핀 및 쿠바 할양 등 미국을 강대국의 위치로 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오늘날 세계 최강의 국가 미국이 되는데 매킨리가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매킨리 관세법으로 인해 미국의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는 비난 또한 많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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