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환온(桓溫)의 북벌과 황위찬탈 야욕

올드코난 2017. 2. 1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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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오호십육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의 동진(東晉)의 환온(桓溫, 312년 ~ 373년)의 자는 원자(元子)로 초국(譙國) 용항(龍亢)출신이다. 화북지방에서 남하한 명문귀족으로 아버지 환이(桓彝)는 명제(明帝) 원년에 일어난 왕돈(王敦)의 난을 진압하는 큰 공을 세웠고 곧이어 일어난 소준(蘇峻)의 난에서 전사했다. 환이의 목에 칼을 찔러 넣은 자의 이름은 강번(江播)으로 3년후 그가 급사하자 당시 18세였던 환온은 조문을 빙자해 강씨 유족들의 집에 칩입해 자식 3형제를 살해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이 사건은 큰 사건이지만 환온은 공신의 유복자이며 남강장공주(南康長公主)와 혼인한 황제의 사위였기에 이 사건은 불문에 붙여졌던 것이다. 


343년 낭야태수(琅邪太守), 서주자사(徐州刺史)가 되고 345년 유량(庾亮)의 동생 안서장군(安西將軍) 유익(庾翼)이 죽자 후임으로 안서장군 겸 형주자사(荊州刺史)가 되어 무창(武昌)을 수비했다. 347년 손성(孫盛) 대도독의 지휘를 받아 사천(四川)의 성한국(成漢國)을 멸망시키고 이때의 공훈으로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 된다. 351년 12월 북벌군을 독자적으로 결성 무창에 집결만 시켰는데도 그 위세에 놀란 염위국(冉魏國)의 서주자사(徐州刺史), 연주자사(兗州刺史), 예주목(豫州牧), 북형주자사(北荊州刺史)가 환온에게 귀순한다. 


학문도 높고 백성들 사이에 명성 높은 차윤(車胤)을 측근으로 등용했는데 이런 환온에 위기감을 느낀 회계왕(會稽王) 사마도자(司馬道子)가 환온의 죽마고우인 은호(殷浩)를 등용 북부군(北府軍) 대장에 추천해 환온을 견제하려했다. 352년 9월 은호는 동진의 숙원이었던 북벌을 환온보다 먼저 허가를 받고 정식으로 군을 북쪽에 진군시켜 허창(許昌)까지 밀고 올라갔지만 부하가 적에 내통을 해 후진(後秦)의 대장 요양(姚襄)에게 참패하고 환온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은호를 탄핵해 실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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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온은 후조(後趙)가 염민(冉閔) 때문에 혼란한 틈을 타 북벌을 결행하지만 354년 전진(前秦)의 정복에 실패한다. 356년 요양(姚襄)의 군대를 격파 낙양(洛陽)을 수복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환온은 동진의 원래 도읍인 낙양 천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수비대만 남기는 것으로 결정이 났는데 당시 낙양은 동진의 변경이었고 치안등의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환온 자신도 천도가 될 것으로 여겼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적을 조정에 내세우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북벌에 대한 공으로 환온은 대사마(大司馬) 겸 대도독중외제군사(都督中外諸軍事)에 올라 364년에 이미 갖고 있던 형주자사에서 양주자사(揚州刺史)로 전임됐고 369년 연주자사 겸 서주자사를 더해 양쯔강 하류의 모든 군대를 수중에 넣었다. 여기에 자신의 정예 군세인 서부군단을 합쳐 동진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친구이며 동진의 명문 귀족 유담(劉淡)도 가세해 환온은 동진 최고의 세력가가 된다.


365년 전연(前燕)에 의해 낙양을 뺏기고 369년 환온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북벌을 감행하지만 전연(前燕) 모용(慕容)에게 대패하는데 이에 자신의 명성이 추락하자 여기서부터 환온은 딴 마음을 품게 된다. 같이 북벌을 했던 치초의 계략을 쫓아 황제 사마혁(司馬奕)이 성병이 있다고 모함을 해 371년 폐위하고 간문제(簡文帝) 사마욱(司馬昱)을 옹립하지만 이듬해 52세로 병사하고 유언으로 태자 사마요(司馬曜)가 뒤를 잇게 하라하지만 환온은 자신이 황제가 되려고 계략을 꾸민다. 


373년 혼온은 병사들을 이끌고 동진의 수도 건강의 효무제 사마요를 알현하자 신하들은 놀라 겁을 먹지만, 사안(謝安)만큼은 침착했다. 환온이 황제가 되려는 것을 간파한 사안(謝安)은 효무제(孝武帝)의 섭정이 되어달라며 제갈무후(諸葛武侯: 제갈공명)가 되어 달라 말한다. 이는 섭정을 하되 황위를 뺏지 말라는 경고였다. 이에 환온은 아직 호족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황위를 뺏지는 못했다. 하지만 환온이 황위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사안이 현명하게 막아주었고 이후 373년에 환온은 갑자기 죽게 된다. 그의 죽음으로 동진의 황권은 안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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