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십육국시대 하(夏, 407년 ~ 431년)는 3대 24년의 짧은 국가였고, 이전의 철불부 시기의 군주중 2대 혁련고승원부터 하나라 건국후 황제로 추숭했다.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 하(夏)나라 군주
철불부 군주
제1대혁련거비(赫連去卑)?~?
제2대혁련고승원(赫連誥升爰)272년 ~ 309년
제3대혁련호(赫連虎)309년 ~ 341년
제4대혁련무항(赫連務恒)341년 ~ 356년
제5대혁련알루두(赫連閼陋頭)356년 ~ 358년
제6대혁련실물기(赫連悉勿祈)358년 ~ 359년
제7대혁련위진(赫連衛辰)359년 ~ 391년
하나라 추승 황제 시호
원황제 (元皇帝) (무열제 추숭)혁련고승원(赫連誥升爰)
경황제 (景皇帝) (무열제 추숭)혁련호(赫連虎)
선황제 (宣皇帝) (무열제 추숭)혁련무항(赫連務恒)
하 태조 (夏太祖) 환황제(桓皇帝) (무열제 추숭)혁련위진(赫連衛辰)--
제1대하 세조 (夏世祖)무열황제 (武烈皇帝)혁련발발(赫連勃勃)
연호: 용승(龍昇) 407년 ~ 413년, 봉상(鳳祥) 413년 ~ 418년, 창무(昌武) 418년 ~ 419년, 진흥(眞興) 419년 ~ 425년/ 재위기간 407년 ~ 425년
요약: 혁련발발(赫連勃勃, 381년 ~ 425년)은 하나라의 창건자로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무열황제(武烈皇帝). 한나라식 이름은 유발발(劉勃勃)이다. 거비의 후예이자 옛 철불부의 지도자인 유발발은 아버지 유위진(劉衛辰)이 죽자 오르도스 서남쪽 고평(高平)까지 도망쳤으나, 그후에도 북위의 토벌군이 여러차례 공격해 와 유랑끝에 후진에 몸을 의탁했다. 후진은 북위의 침입을 막기 위해 유발발을 오르도스에 배치했다. 407년 유발발은 옛 철불부 및 선비 여러부족을 규합한 뒤 후진에게서 독립하여 대선우(大単于), 대하천왕(大夏天王)이라 칭하고 용승(龍昇)으로 건원(建元)한다.(하의 건국) 그 해 하나라는 오르도스 전역을 평정하고 유발발도 본래 흉노의 성씨인 혁련씨로 개명한다. 견고한 통만성(統萬城)을 축성해 세력을 키우고 당시 중원의 지배적 세력이었던 북위에 대항하기 위해 414년 북연과 동맹을 맺어 견제하게 하고, 그해부터 다음해까지 산서 일대를 공략한다. 417년 관중의 후진이 동진의 유유에 의해 멸망하자 418년 하나라 군은 남하하여 동진의 후방 수비대를 격파하고 장안 등 관중 여러 성을 점령한다. 그해 혁련발발은 제위에 올라 419년 진흥(眞興)이라 개원하고 통만성을 수도로 정한 뒤 귀환했다. 하나라의 영역은 관중, 오르도스, 산서 남부에 이르렀고, 토번, 북량을 복속시켜, 화북 서쪽에서 대세력을 쌓았다. 424년 장안에서 반란이 일어나 내란상태가 되고, 425년 혁련발발이 죽자 하나라의 세력은 급속히 쇠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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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진왕(秦王) 혁련창(赫連昌)
연호: 승광(承光) 425년 ~ 428년/ 재위기간 425년 ~ 428년
요약: 혁련창(赫連昌, ? ~ 434년)은 북위에 패배해 비호하(庇護下)에서 회계왕(会稽王)이 되고(재위:428년 ~ 430년) 그 다음에 진왕(秦王)이 된다(재위:430년 ~ 434년). 혁련발발의 3남이다. 425년 혁련발발이 죽자 2대 대선우가 된 혁련창은 이듬해 2개의 길로 5만 병력을 보내 서진을 공격하여 수도 포한(枹罕)을 함락하고 서평(西平)까지 도달했지만 북위는 이 기회를 틈타 하나라에 대한 제1차 원정군을 보내 관중 여러 성을 점령했다. 427년, 북위는 제2차 원정군을 파견해 수도 통만성을 함락시켰다. 혁련창은 통만성을 탈출해 안정(安定)을 수도로 삼아 저항을 계속했으나, 각지에서 북위에게 패배해 정권은 와해되었다. 428년, 혁련창은 북위에게 사로잡히고 혁련정이 도망에 앞서 평량(平涼)에서 대선우에 즉위하였다. 434년 북위에 의해 살해당했다.
제3대 평원왕(平原王)혁련정(赫連定)
연호: 승광(勝光) 428년 ~ 431년/ 재위기간 428년 ~ 431년
요약: 혁련정(赫連定, ? ~ 432년)은 하의 제3대 황제(재위:428년 ~ 431년)로 혁련발발의 5남이다. 혁련창의 동생 혁련정은 도망에 앞서 평량(平涼)에서 대선우에 즉위하고 그해 각지의 패잔병을 규합해 북위에게서 관중 전역 및 통만성을 제외한 오르도스 여러 성을 탈환했다. 430년 남조 송나라와 동맹을 맺고 혁련정은 통만성 탈환에 나섰으나 북위는 제3차 원정군을 파견해 기어코 수도 평량마저도 함락시켰다. 하나라는 다시 와해되고 혁련정은 패잔병을 이끌고 상(邽)으로 도망쳐,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431년 1월 혁련정은 재기를 노리고 서쪽으로 나아가 남안(南安)의 서진을 공격해 멸망시키고 이어서 전군을 이끌고 북량 원정에 나섰다. 6월 하나라 군은 황하를 건너는 도중 복속했던 토욕혼군에게 습격을 받아 괴멸당하고, 혁련정도 사로잡혀 하나라는 멸망했다. 혁련정은 432년 북위에 의해 처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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