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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보다는 오래 살고 싶었던 광주 할아버지의 죽음

올드코난 2017. 6. 2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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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어제 밤에 가 오늘 새벽에 돌아왔습니다. 광주 분이신데 얼마전에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를 받더니 결국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K할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제가 K할아버지를 안지는 7, 8년 정도 됩니다. 우선 제가 이 분과 친해지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0여년전 이 동네 근처에 처음 이사를 와 살면서 동네 사람들의 안면을 조금씩 익혀 가던중 7년전쯤 동네 약수터에서 꽤 유명한 수구꼴통으로 통하는 극우 성향의 TK 출신 노인과 K할아버지가 크게 언쟁을 벌였었습니다. TK 노인은 박정희추종자에 5.18광주민주화 운동은 반란이라고 우기는 그런 형편없는 인간입니다. 지금도 약수터에서 가끔 봅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명박이 한창 언론장악을 할 즈음이어서 그런지 이런 극우성향의 노인들을 선동하는 자들이 있다고 의심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우리 동네에서 전라도 폄하와 종북몰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는데, 꽤 조직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냥 한 두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서 무슨 교육을 받은 것처럼 한꺼번에 목소리를 높이며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욕을 많이 하던 그런 때였습니다. 


이런 시기에 K할아버지가 대다수인 보수와 극우 노인들을 향해 동네에서 왕따를 당할 걸 알면서도 “김대중 함부로 욕하지 말어!”라고 말할 수 있던 것은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 날은 유독 TK 노인의 광주를 비하하는 말이 심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날 TK 노인 패거리들 수가 좀 많았습니다. 주변에 자기 편인 사람들이 많으니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나 봅니다. 


하지만, TK 노인이 한가지 생각을 못했던 것이 있습니다. 이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아주 맑은 가을날이었습니다. 약수터에 중년층과 젊은 사람들이 꽤 있었고, 저도 이때 있었습니다. TK 노인과 K할아버지의 말다툼에 젊은 사람들도 가까이 와서 듣다가 대구노인의 도를 넘은 광주 비하 발언에 K할아버지 편을 들어주자 TK 노인이 화를 주체하지 못해 욕을 하면서 주먹질을 날릴 때, 저를 포함해 젊은 사람 몇이 나서서 TK노인을 제압을 한 후 말 조심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남기고 쫓아내 버렸습니다. TK 노인이 자리를 뜨자 저는 K할아버지와 같은 동네고 해서 K할아버지를 집까지 배웅해 주었고 이때부터 제가 K할아버지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소소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K할아버지의 아픈 과거를 조금 알려 드리겠습니다. 

K할아버지와 가끔 술도 몇잔을 했는데, 술에 취하면 늘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전두환 개자식보다는 오래살아야 되는데...”


K할아버지는 광주 분이신데, 5.18광주 민주화 운동(K할아버지는 광주학살이라고 부릅니다.)에서 당신은 목숨은 건졌지만 친구분이 목숨을 잃었고, 친척분들과 이웃 그 외 많은 분들이 심한 폭력을 당해 피를 흘리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신 분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광주 시민들은 피해자였지만 반란군, 빨갱이로 매도당하며 2차 3차 피해를 당합니다. 이때 맺힌 그 분노와 한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K할아버지가 광주를 떠나 서울로 오게 된 이유는 오로지 분노와 복수심때문이었습니다. 전두환이 살고 있는 서울에 살면서 전두환을 죽이거나, 전두환 보다는 오래 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이 참 야속합니다. K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전두환은 아직도 발 뻗고 잘 살고 있습니다. 전두환 뿐만이 아닙니다. 이기백, 정호용, 허삼수, 장세동 등등 여전히 5공 쓰레기들이 버젓이 살아 대한민국의 지도층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반성이나 사죄 따위를 할 인간들이 아닙니다. 


K할아버지의 죽음이 더더욱 슬픈 것은 K할아버지는 가난하게 살다 가슴에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지만, 전두환과 5공 똘마니들은 죽는 순간까지 호의호식하면서 거드름 피면서 살 겁니다. 피해자는 죽는 순간까지 피해자로 남았고, 가해자는 승자가 되어 버리는 이런 잘못된 세상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할까요. 


거짓과 진실이 바뀌고 불의에 침묵하고 굴복한다면 K할아버지의 아픔과 한이 K할아버지만의 한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역사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같은 일이 되풀이 된다는게 바로 역사의 교훈입니다. 전두환과 5공 부역자들을 반드시 심판해야 합니다. 쿠데타가 성공해도 처벌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야 또 다른 불행한 군인이 등장하지 않을 겁니다. 제2의 전두환을 막기 위해서라고 광주 5.18유족분들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라도 전두환의 죄를 반드시 물어야 할 것입니다.


광주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고, 5.18 광주 희생자 유가족분들에게 위로의 말을 남기며 이만 줄입니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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