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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 131

시) 시인 이육사 作 자야곡, 꽃, 호수, 황혼

시인 이육사 詩 자야곡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 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연기는 돛대처럼 날려 항구에 돌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절여 바람 불고 눈보라 치잖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소리 숨 막힐 마음 속에 어데 강물이 흐르느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맘에 드리노라. 수만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꽃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 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순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움직거려 제비떼 까맣..

배움/시 2010.07.14

시) 시인 이육사 作 청포도, 광야, 일식, 절정

시인 이육사 詩 청포도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며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리.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

배움/시 2010.07.14

시) 시인 박용철 作 떠나가는 배, 고향, 눈은 내리네

시인 박용철 詩 떠나가는 배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 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미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고향 고향은 찾어 무얼 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 흐너진대 저녁 까마귀 가을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로 옛자리 바뀌었을라. 어린 때 꿈을 엄마 무덤 위에 남겨두고 떠도는 구름 따라 멈추는 듯 불려온 지 여남은 해 고향은 이제 찾어 무얼 ..

배움/시 2010.07.14

시) 시인 이은상 作 가고파

시인 이은상 詩 가고파 -내 마음 가 있는 그 벗에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 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 보고 저기 가 알아 보나 내 몫엔 즐거움은..

배움/시 2010.07.14

시) 시인 양주동 作 산길, 산 넘고 물 건너, 나는 이 나랏 사람의 자손이외다

시인 양주동 詩 산길 1 산길을 간다, 말 없이 호울로 산길을 간다. 해는 져서 새소리 그치고 짐승의 발자취 그윽히 들리는 산길을 간다, 말 없이 밤에 호올로 산길을 간다. 2 고요한 밤 어두운 수풀 가도 가도 험한 수풀 별 안 보이는 어두운 수풀 산길은 험하다. 산길은 멀다. 3 꿈같은 산길에 화톳불 하나. (길 없는 산길은 언제나 끝나리) (캄캄한 밤은 언제나 새리) 바위 위에 화톳불 하나. 산 넘고 물 건너 산 넘고 물 건너 내 그대를 보려 길 떠났노라. 그대 있는 곳 산 밑이라기 내 산 길을 토파 멀리 오너라. 그대 있는 곳 바닷가라기 내 물결을 헤치고 멀리 오너라. 아아, 오늘도 잃어진 그대를 찾으려 이름 모를 이 마을에 헤매이노라. 나는 이 나랏 사람의 자손이외다 이 나랏 사람은 마음이 그의 ..

배움/시 2010.07.14

시) 시인 김영랑 作 모란이 피기까지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오매 단풍 들것네, 내 마음을 아실 이

시인 김영랑 詩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어느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르러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은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

배움/시 2010.07.14

시) 시인 이장희 作 봄은 고야이로다, 청천의 유방

이장희 詩 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우리로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청천의 유방 어머니 어머니라고 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 푸른 하늘에 따스한 봄이 흐르고 또 흰 별을 놓으며 불룩한 유방이 달려 있어 이슬 맺힌 포도 송이보다 더 아름다와라. 탐스러운 유방을 볼지어다. 아아 유방으로서 달콤한 젖이 방울지려 하누나 이때야말로 애구의 정이 눈물 겨웁고 주린 식욕이 입을 벌리도다. 이 무심한 식욕 이 복스러운 유방... 쓸쓸한 심령이여 쏜살같이 날라지어다. 푸른 하늘에 날라지어다. -----..

배움/시 2010.07.14

시) 시인 이상 作 거울, 꽃나무, 절벽, 오감도

이상 詩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꽃나무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 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 하야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런흉내를내었소. 절..

배움/시 2010.07.13

시) 시인 이호우 作 개화, 난, 살구꽃 핀 마을

이호우 詩 개화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난 벌 나빈 알 리 없는 깊은 산 곳을 가려 안으로 다스리는 청자빛 맑은 향기 종이에 물이 스미듯 미소 같은 정이여. 살구꽃 핀 마을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 이호우. 1912 - 1970. 경북 청..

배움/시 2010.07.13

시) 시인 노천명 作 사슴, 남사당,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노천명 詩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남사당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내 남성이 십분 굴욕되다. 산 너머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

배움/시 201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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