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시

시) 시인 박목월 作 산이 날 에워싸고, 우회로, 난

올드코난 2010. 7. 13. 20:06
반응형

박목월 詩

산이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우회로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이 깔렸다.

  밤은 에테르로 풀리고

  확대되어 가는 아내의 눈에

  달빛이 깔린 긴 우회로

  그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메스를 가아제로 닦고

  응결하는 피.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혼수 속에서 피어 올리는

 

  아내의 미소(밤은 에테르로 풀리고)

  긴 우회로를

  흔들리는 아내의 모습

  하얀 나선 통로를

  내가 내려간다.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 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나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 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