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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인 김현승 作 눈물, 플라타나스(플라터너스), 가을의 기도,절대고독

올드코난 2010. 7. 1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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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현승 詩

    
눈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는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플라타나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나스,

  너의 머리는 어느 덧 파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나스,

  너는 내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너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나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나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길이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절대고독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혼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인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때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나의 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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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 1913 - 1975. 전남 광주 출생. 호는 남풍, 다형. 숭실전문시절 <동아일보>에 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이 발표됨으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지적이고 건강한 생리를 지닌 기독교적 주지 시인이다. <서울시 문화상>(1973)을 수상. 시집으로는 <김현승 시초><옹호자의 노래> <절대 고독> <김현승 시선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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