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에서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그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의 슬픈 노정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 있는 송덕비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도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빗긴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눈오는 밤에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 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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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용호(1912 – 1973) 소개 설명
경남 마산 출생. 호는 학산, 야돈, 추강이다. 일본 메이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면서 <맥> 동인으로 활동했다. <자유문학상>(1956)을 수상했고 시집으로는 <향연> <해마다 피는 꽃> <날개><의상세례>와 서사시 ^6 236^남해찬가^356 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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