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시

시) 시인 김용호 作 주막에서, 눈오는 밤에

올드코난 2010. 7. 1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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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용호 詩


주막에서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의 슬픈 노정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 있는 송덕비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도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빗긴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눈오는 밤에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 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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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용호(1912 – 1973) 소개 설명

경남 마산 출생. 호는 학산, 야돈, 추강이다. 일본 메이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면서 <> 동인으로 활동했다. <자유문학상>(1956)을 수상했고 시집으로는 <향연> <해마다 피는 꽃> <날개><의상세례>와 서사시 ^6 236^남해찬가^356 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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