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 (saccharin 密輸事件) 설명,

올드코난 2016. 9. 3. 12:16
반응형

1966년 삼성의 한국비료공업이 정부 정치자금과 관련해 건설자재로 가장해 사카린을 밀수하려다 발각된 사카린 밀수 사건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본다.

정부와 기업의 결탁한 추악한 범죄, 국민을 기만했던 박정희와 이병철의 탈을 벗긴 사카린 밀수 사건 (saccharin 密輸事件) 설명


1.배경

삼성그룹 계열사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는 미쯔이 물산에서 상업차관을 도입해 울산에 요소비료공장 건설을 계획했다. 이는 박정희 정권과 합의된 사항으로 196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농촌 인구가 많은 상황에서 비료공장 건설은 업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조건을 수락하는 대신 이병철은 국민, 정부, 언론이 비료공장 건설을 지원할 것과 정부가 책임지고 10억 원의 은행 융자를 해줄 것, 공장건설에 필요한 인허가 등을 신속히 해줄 것, 공장건설과 관련하여 한 푼의 정치자금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2. 사건 내용

미쯔이 물산과의 차관교섭과 도입과정, 조건협상은 이병철이 직접 담당했고 정부는 지불보증을 서는 것으로 지원했다. 차관의 내용은 비료의 연생산량 33만 톤, 외자 4200만 달러 2년 거치 8년 상환, 이자율 연리 5.5%였다. 당시 이자율이 6∼6.5%였음을 감안하면 낮은 이자였기에 삼성특혜설이 돌았다. 이런 과정에서 삼성은 사카린 원료인 OTSA를 비롯 당시 금수품이었던 양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등을 건설자재로 속여 대량으로 밀수하고 이것을 암시장에 되팔아 엄청난 이익을 본다.

그러다. 1966년 5월 24일 삼성이 경남 울산시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 포대(약 55t)를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 들통이 났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부산세관은 같은해 6월 1059 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여만 원을 부과한다.


3.이맹희 증언

사카린 밀수를 현장지휘했다고 밝힌 이맹희씨가 1993년 발간한 《회상록 - 묻어둔 이야기》에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들이 적극 감싸고 돈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고백하였다.

“1965년 말에 시작된 한국비료 건설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는 공장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기계류로 대신 공급하며 삼성에 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를 줬다. 아버지(이병철 회장)는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고 박 대통령은 “여러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그 돈을 쓰자”고 했다. 현찰 100만달러를 일본에서 가져오는 게 쉽지 않았다. 삼성은 공장 건설용 장비를, 청와대는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 밀수현장은 내(이맹희 씨)가 지휘했으며 박 정권은 은밀히 도와주기로 했다. 밀수를 하기로 결정하자 정부도 모르게 몇가지 욕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 참에 평소 들여오기 힘든 공작기계나 건설용 기계를 갖고 오자는 것이다. 밀수한 주요 품목은 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스테인레스 판과 사카린 원료 등이었다.”


4. 드러난 진실

밀수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당시 김정렴 재무부장관이 나서서 이 사건이 삼성계열의 한국비료와 무관하며, 한국비료 직원의 개인적 밀수라고 주장했고, 이날 한국 비료측도 동일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밀수사건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고조되자, 9월 19일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검에 전면수사를 지시했고, 22일에는 이병철이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일체의 기업활동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한다.

그런데 이병철의 성명이 있던 날 미쯔이 물산이 사실상 삼성이 밀수의 주체였음을 확인해주는 발표가 있었다. 이 발표에서는 사카린 원료인 OTSA는 건설자재로 정식 수출계약된 것이며, 그 대금은 차관대금에서 결제했다는 곳으로써 이 밀수사건이 한국비료 일개 직원의 개인적 밀수가 아님을 확인해주었다.


5. 결과

사건 당시 미쯔이 한국담당자인 니시지마 상무는 후에 “상대측이 건설자재로 요구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미쯔이 물산으로서도 내자부족 등으로 한국 측이 공장이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필요할 수밖에 없는 행위로 생각했다”고 변명했다. 여기에 이 요소플랜트는 실제 3500만 달러인 것이 4390만 달러로 올라갔고, 차액 약 30억 엔은 한일 양국 정치인들에게 제공되었다.


6. 문제점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밀수행위를 묵인, 방조, 지원했다는 점이다. 정치자금을 매개로 권력상층부(박정희)와 기업(삼성)이 거래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박정희 정부가 내걸은 국정 구호가 “구악일소”로 부패척결이었지만 사카린 사건으로 정권의 모순이 드러나게 되고 당시 삼성家에서 중앙일보를 세우고 언론에 진출하던 때였기에 경쟁 언론사들이 사카린 밀수 사건에 대한 공격을 강하게 받으며 언론 장악에 제동이 걸린다.

이 사건은 한·일 양국의 대재벌이 밀수를 간여했다는 점에서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1966년 9월 22일 김두한 의원이 국회에서 똥오줌을 던진 ‘국회오물투척사건’이 발생하기도 했고 10월 5일에는 『사상계』 장준하 사장은 민중당 대구 유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밀수두목’으로 규탄했다. 이 사건과 발언때문에 김두한, 장준하는 각각 9월 24일, 10월 26일에 구속되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