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서평

동백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 대중문화로 보는 박정희 시대 (저자 이영미) 문화도 역사다!

올드코난 2017. 5. 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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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발간된 신책을 소개해 본다. 동백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 대중문화로 보는 박정희 시대 (이영미 지음)라는 책으로 헌재에서 박근혜의 탄핵심판이 결정되기 전인 2월 발간된 신간이다. 내가 역사에 관심이 많고, 특히 최근 현대사에 관심이 많아져서인지 이런 책에 자꾸 눈이 가는데, 이 책은 정말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제가 참신하다. 


역사는 정치의 기록이지만 정치만의 역사의 전부가 아니다. 문화와 예술 또한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 시대와 그 시절의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때의 문화만큼 좋은 참고자료가 없을 것이다. 저자는 해방후부터 박정희 시대까지를 중심으로 그 당시 화제가 되고 인기를 얻었던 영화와 음악을 예로 들어 왜 이런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공감을 받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탄압을 받았는지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했던 많은 자료연구를 토대로 기술했다. 


댄스홀에서 춤을 추었다는 이유만으로 잡혀갔던 시대, 영화조차 제대로 만들 수 없었고 대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금지곡으로 만들던 시절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 버린 것은 아닐까. 자유로움에 익숙해지고 원하는 음악과 영화를 모두 볼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과거 박정희 시대를 잊고 있었기에 지금 이명박근혜 시대를 맞은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서, 추억을 위해 만든 책이 아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는 과거를 제대로 몰랐고, 망각해 버렸기 때문이다. 과거를 잊는 순간 역사는 되풀이 된다. 이 또한 역사의 교훈이 아니겠는가. 이런 책들이 이제는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이 책을 꼭 한번 읽어 보기를 추천하며 

[참고: 목차]

머리말 : 우리는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프롤로그 : 박정희 시대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박정희 시대를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 박정희 시대의 대중문화? 그 질긴 선입견 | 문화로 역사를 읽는다는 것 | 대중문화로 당대의 사회심리를 읽는다 | 어쩌면 이렇게 딱딱 들어맞을까! | 박정희 시대의 사회심리

제1부 혁명과 정변, 그 격변의 시기를 향하여

불안정하고 어설픈 1950년대 “한국의 오늘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 | 대중예술사에서 1960년대는 확실히 새로운 시대 | 1950년대 한국에 웬 인도와 페르샤? | 미국을 중심으로 ‘상상지도’를 그리다

자유부인만 춤을 춘 건 아니다 조직폭력배와 TV와 쿠데타 | 서울에 땐스홀을 허하라? | 춤추는 것이 죄인가? | ‘자유’, 그 가슴 벅차고도 불편한 말 | 전쟁, 그것은 자유와 해방의 계기 | ‘아프레걸’이라는 신조어 | ‘자유부인’만? 그 남편들도 다르지 않았다 | 여론의 공격은 ‘남자 어른’에게 불편한 곳으로 향한다

날라리들이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어머, 전직 대통령들이 살아 있다니!” | 대통령이 양녕대군 16대손임을 들추던 시대 | 서울 장안 처녀 6할이 처녀성 상실? | 잡지에 대한 단속, 풍기 문란과 공안의 물 타기 | 자유주의적이면서 ‘아프레하지’ 않은, 온건한 절충 | 날라리들이 혁명을!

제2부 격변의 시기, 개혁과 희망

영화로 확인되는 4·19와 5·16의 연속성 태평양전쟁과 6·25전쟁, 종종 헷갈린다 | 4·19와 5·16은 종이 한 장 같은 차이? | 4·19와 5·16, 대중예술 작품의 연속성 | 합리적으로 도전적인 아들과 관용적인 부모 | 늙은 아버지가 초래한 가부장제의 위기 | 늙은 아버지의 어리석음까지도 포용하는 능력 있는 장남 | 당시의 민심은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

개혁의 청년이여, 근대적 기술로 성실히 일하라 4·19와 5·16 사이, 어떤 작품을 기억하는가? | 날라리에서 노동하는 인간으로 | 근대적 기술자, 하얀 가운과 작업복 | 생산, 노동, 개혁하는 청년 | 민심에 올라탄 5·16 정권

또순이는 돈을 모아 사장이 되었을까? ‘또순이’란 말을 아시나요? | 이승만이 아니라 박마리아가 문제? | 당찬 여성이라도 남성의 보조자 | 돈 버는 여자를 유한마담과 동일시한 시대 | 일제 말의 일하는 여성과 달라진 지점 | 강해진 여자들 | 최은희 VS 김지미 | 김지미와 최은희는 모두 1960년대에도 살아남았다

제3부 ‘잘살아보세’의 희망과 역사라는 난제

자신의 역사를 갖고 싶은 욕망과 그 이면 언제 나온 노래일까? | 역사는 ‘구성’하는 것이다 |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증하는 때 | 사극의 중심은 늘 조선시대였다고? 천만에! | 궁궐이 세트장이 된 시대 | 가족물·연애물의 문법으로 읽힌 역사 | 6·25 소재 전쟁 영화의 전성시대 | 미군이 사라진 6·25전쟁 | 멋진 국군, 멋진 전쟁 | 국군인 듯 국군 아닌, 국군 같은

응답하라 1945 일제강점기 눈물의 트로트는 ‘나라 잃은 설움’ 때문이다? | 과도한 민족주의적 해석은 1950년대부터 | 구한말과 3·1운동에 집착하는 영화들 | 치욕스런 역사를 다룬 이유 | 복고 열풍은 왜 부는가? | 다큐드라마와 ‘만주 활극’의 인기 | 마적과 독립운동가가 뒤엉킨 만주 활극 | “내가 왜정 때 만주에서 개장사 할 적에”

〈동백아가씨〉 토사구팽 전말기 일장기는 봐줄 수 있는데 〈기미가요〉에는 파르르 | 늘 분노하기만 하는 ‘반일 감정’ | 트로트 부활을 견인한 〈동백아가씨〉 | 한일 대중문화 교류는 예정된 수순이다? | 트로트의 왜색 시비 재연 | 리요시코의 〈사랑의 붉은 등〉 | 방송 금지곡의 순조로운 일본 진출 | 〈동백아가씨〉는 언제 금지곡이 되었는가? | 한일 대중문화 교류는 물 건너가고 | 팽 당하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염장 지르는 노래 | 횡재 아니면 들어먹기 | ‘빽’ 없는 사람은 모두 평등하게 가난했던 1950년대 | 착실하게 돈 모으니, 쥐구멍에도 볕이 든다 | 가불로 살지만, 나는야 성실한 월급쟁이 | 부잣집 딸과의 사랑을 꿈꾸는 영화들 | 고속성장의 시작, 그리고 50년 후

제4부 몰아붙이니 밀려가면서도 ‘미워도 다시 한 번’

〈팔도강산〉은 독재정권의 노골적인 홍보영화였다 1967~1968년, 민심의 바람이 바뀌다 | 정치사와 맞물리는 대중예술사의 변화 | 조국 근대화 유람하기 | 이런 ‘어메이징’한 여행 코스라니! | 이들은 왜 여행을 했을까? |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장편 극영화 ‘광고’ | 대통령 선거 직전에 전국적 무료 관람 | 이승만 정권 때와 같은 점 혹은 다른 점 | ‘탄신’ 축하 노래를 지어 바치던 때와는 달랐다 | 대통령을 내세운 홍보성 행사의 변화 | 갑자기 많아진 주문 제작 건전가요 | 대중들의 동의를 구하던 마지막 시기

성장과 희망에서 배제된 자들과 〈미워도 다시 한 번〉 한국 영화사의 최고 기록 갱신 | 평론가들이 뭐라 하건 간에 | 손발 오그라드는 걸 꾹 참고 | 남편들의 불륜은 늘 있어왔건만, 왜 하필 이때에? | 희망의 거품이 살짝 꺼진 1963~1964년 | 1967~1968년, 민심의 바람이 또 바뀌다 | 성장의 혜택, 모두가 함께 나눌 수는 없었다 | 신파적 작품에 나타난 시골과 변두리 | ‘잘살아보세’ 바람에서 배제된 ‘시골’

어느 시대나 삐딱한 젊은 것들은 있었다 저음 가수 배호의 매력 | 듬직하고 안정감 있는 남자 가장 | 울고 싶은 세상인데도 저항적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 김기팔이란 작가를 기억하는가? | 불쌍한 아버지? 바로 아버지가 문제야! | ‘피해자 코스프레’ 좀 하지 마! | 무책임한 중년 가장과 풍비박산의 가정 | 작가의 삐딱함에 호응해줄 대중

제5부 종신 집권과 대학생과 청년문화

청년문화는 왜 하필 1970년대였을까? 이식론, 자생론, 혼종론의 소모적 대립을 넘어서 | 한국의 ‘엘비스와 비틀스 바람’은 언제부터인가? | 한국 최초의 포크와 록 음반 | 한국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베이비부머 | 청년문화, 포크, 대학생 | 판이 뒤집힌 1971년 | 국가비상사태와 〈아침이슬〉

청년문화와 정치적 진보성은 어떤 관계였는가? 데모꾼들은 ‘김민기 노래’를 즐기지 않았다 | 머리도 가방도 자유롭게 너펄너펄 | 새로운 자유주의적 문화에 대한 각 시대의 대응법 | 자유주의적 신세대 문화가 민주주의와 손잡은 1990년대 | 히피, 민주주의, 한국의 청년문화 | 청년문화의 중심, 록이 아닌 포크였던 이유 | 자유주의 문화가 ‘조금은’ 숨 쉴 수 있었던 1970년대

드라마 〈아씨〉와 〈여로〉의 히트가 의미하는 것 ㆍ트윈폴리오 노래와 이미자 노래, 어느 것이 먼저인가? | 대중가요가 가장 먼저, 그리고 소설과 영화 | 복고 경향을 보인 TV드라마 | 드라마 〈아씨〉에 전 국민이 감동했다고? | 〈아씨〉·〈여로〉에 대한 묘한 여론 | 전근대적이어서 근대적 조국의 주체가 되었다는 역설 | 너희 젊은이들도 순종하고 노력하면

서양적이어서 더욱 한국적일 수 있었던 청년들 나 영어 잘하는데, 이건 아냐! | 〈새타령〉과 〈타복네〉의 간극 |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탈춤·판소리 붐 | 장발에 탈을 쓰고 ‘얼쑤!’ | ‘박정희 나라님 잔 뺏기 공차기 누가 누가 잘하나’ | 민족문화와 박정희와 대학생 | 활주로의 〈탈춤〉은 어떻게 봐야 하나?

청년문화에 여성의 자리는 있는가? ‘구원의 여성’과 ‘여사친’ | 이들은 ‘여류’가 아니다 | ‘여사친’ 이미지의 씩씩한 여자 가수 양희은 | 신비화된 여성 이미지 | 소녀, 성녀, 창녀? | 더디지만 분명히, 사람이 되어간 여자들

대마초 사건, 그 화려한 스리쿠션 수상하게 과도한 사건 | 그들은 몇 년 징역형을 받았을까? | 도대체 왜 대중음악인만 탄압했을까? | 권력자들이 비상식적이고 황당한 판단력을 지녔다고? | 대마초 사건은 저항에 대한 탄압이었나? | 저항 혹은 퇴폐? 무엇을 노린 것일까? | 날라리부터 데모꾼까지 싸잡은 이유 | 화려한 ‘스리쿠션’

에필로그 : 1975년 그 이후, 유신 말기의 나비효과 거품은 가라앉았다 | 처참한 대중예술계 | 공백은 메워지고 청년들은 성장한다 | 〈아침이슬〉은 어디로 갔을까? | 창작자도 가수도 아닌, 수용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의미 | 10월 유신 덕분(!)에 | 진보적 예술 문화 운동의 주체들, 1975년에 성장하다 | 사라지는 것은 없다


[참고: 저자 이영미]

대중 예술 평론과 한국 대중 예술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작가로 1961년 서울의 동대문 밖에서 태어나 죽 서울에서만 자란 서울내기이다. 어쩌다가 집에서 먼 ‘국민학교’를 다닌 덕분에 신설동에서 을지로 6가까지 서울 거리를 눈 감고도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누비고 살았다고. 아기 때부터 텔레비전 앞을 떠날 줄 몰랐던 ‘텔레비전 키드’로 방송극과 「쇼쇼쇼」 같은 오락 프로그램에 열중했던 ‘조기교육’으로 인해 지금의 전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고려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나 남들은 별로 관심 갖지 않는 연극이나 대중 예술에 관심을 가진 좀 별난 학생이었고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른 즈음에 한국 대중 예술의 흐름과 대중성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자신의 화두임을 깨달았고, 대중 예술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연구만 골라서 하면서 혼자 뛰면 늘 1등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무모함으로, 오늘도 옛날 방송극 자료 더미에 묻혀 끙끙거리며 연구중이다.저서로는 『한국 대중 가요사』,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대학로 시대의 극작가들』, 『마당극 양식의 원리와 특성』, 『마당극 리얼리즘 민족극』, 『이강백 희곡의 세계』,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 『광화문 연가』, 『노래이야기주머니』, 『재미있는 연극 길라잡이』, 『민족 예술 운동의 역사와 이론』, 『서태지와 꽃다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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