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정치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 김부겸 의원 프로필

올드코난 2017. 5. 30. 11:20
반응형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 김부겸(金富謙) 의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김부겸 장관 후보자는 1958년 1월21일 생으로 만 59세 한국나이로는 60세로 경북 상주 오대리에서 아버지 김영룡, 어머니 차숙희의 장남으로 태어나 만 4세에 동네 형들을 따라 상주 남부초등학교에 입학 이후 대구 초등학교로 전학과 졸업을 하고, 대구 중학교, 경북고등학교(56회)를 졸업합니다. 이 시기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태에 항의하기 위하여 친구들과 함께 호주머니를 털어 격려 광고를 게재했다고 전하며 서울대 입학 시험에 떨어지고 성균관대에 진학하지만 대학 휴교령이 떨어지자 사법고시 공부를 하려다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 1976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합니다. 


서울대에서는 이념 서클인 ‘농업경제학회’에 가입. 2학년 때 정치학과로 진로를 선택하고 재학중 학생운동을 하면서 2번 구속과 제적 복학을 반복하게 되는데 1977년 11월 서울대 중앙도서관 점거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및 제적을 당하고 다음해인 1978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영등포 구치소, 서울 구치소, 안양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출소했고 1980년 5.17 계엄령 확대와 함께 신군부의 포고령 위반 혐의(김대중 내란음모 사건)로 공개 수배되어 두번째로 구속 제적되어 안양 교도소에 복역하게 됩니다.


1982년 친구 이영재(목사)의 동생 이유미와 결혼 이 해 12월 첫딸을 낳고 1983년 대구 미 문화원 폭파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수차례 강제 연행 및 고초를 당하자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해 작은 전자 회사에 취직합니다.  이후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면서 학업을 이어가 1987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6월 항쟁에도 참여합니다.


만 서른이 되던 1988년 87년 12월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로 패배한 후 예춘호, 조순형, 장기욱 등 야당 인사와 민청학련 세대인 제정구, 유인태, 원혜영, 고영하 등과 함께 '반지역주의 개혁 정당'을 표방한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해 동작구갑 선거구에 첫 출마를 했지만 낙선하고 '민중의 당' 추진 인사들과 함께 진보적 대중 정당 건설을 위한 정치운동 단체인 '진보정치연합'을 만들고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1991년 3당 합당을 거부한 민주당에 입당 제도정치권에 정식으로 입문해 9월 신민주연합당(김대중 총재)과 합당한 민주당에서 부대변인을 맡게 됩니다.


1992년 대선을 앞둔 11월 '이선실 간첩단 사건'에연루 국가안보법 위반 혐의로 세번째 구속되고 다음해인 불고지죄로 징역1년, 집행유에 2년을 선고받아 2월에 석방되고 민주당에서 활동하다 1997년 조순 서울시장을 후보로 내세워 대선을 준비하던 중 다시 조순-이회창의 연대로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 새로 창당한 한나라당으로 당적이 변경하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경기 군포시 지역구에서 당선되고 17대에서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하고 18대 국회에서는 통합민주당으로 3선에 성공합니다.


이후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19대에서 대구 수성구갑에 도전했지만 낙선하고 16대 지방선거에서 대구 시장에 도전하지만 역시 낙선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민주당 소속으로 대구 수성갑 지역구에서 62.3% 득표율로 당선 4선 의원이 됩니다. 대구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된 건 31년만이며 소선거구제로는 45년만의 일로 지역주의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오늘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로 내정되었습니다.


김부겸 의원은 솔직하고 뜨거운 가슴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외모는 편하고 서민적이지만 알고 보면 의지가 강한 사람이며 용기있는 인물로 평가 됩니다. 국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김부겸 의원, 행정자치부 장관으로서는 어떻게 처신할지 지켜 봅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