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김기춘이 관여했나?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내막과 배경,검사 명단, 의미 설명]

올드코난 2017. 7. 7. 14:08
반응형

어제 JTBC뉴스룸에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피해 당사자였던 강기훈씨가 국가의 배상책임도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강기훈씨가 국가에 청구한 31억 중 일부인 6억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인데, 가장 아쉬운 점은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에 대한 배상청구는 인정되지 않았다. 잊혀지고 있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본다.


1. 배경

노태우 대통령 임기 후반이었던 1990년 1월 22일 집권 여당 민주정의당(노태우 대통령)과 제2야당 통일민주당(김영삼 총재),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김종필 총재)과 합당해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킨 3당합당이 있었다. 이에 반대하는 여론과 오랜 군사독재 정치 종식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 그리고 노태우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특히 1991년 4월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가 시위 중 경찰 사복체포조인 백골단에 의해 구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4월 27일 범국민 대책회의가 결성되어 명동성당에서 철수하는 6월29일까지 전국적으로 많은 집회와 시위가 일어났다. 또 4월 3일 경원대생 천세용, 4월 29일 전남대생 박승희 등이 분신자살을 하는 등 대한민국 전역은 반 노태우, 민주화 투쟁으로 뜨겁게 달구어 진다. 대학생 분신 자살 시도가 계속되자 당시 서강대 총장 박홍은 이를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하고 검찰은 배후를 수사하는데 이는 무고한 희생양을 찾아 사건을 조작하려는 공안검찰의 대표적인 함정수사였다. 이때 걸려든 인물이 바로 강기훈 씨였던 것이다.


2. 사건 발생

1991년 5월 8일 아침 8시 7분 경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 본관 5층 옥상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이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 후 16.5 미터 아래로 투신 아침 8시 25분 경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옥상에 유서 2장이 발견되고 검찰은 강기훈을 유서대필자로 지목하는 데 이유는 강기훈이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에 함께 근무하던 사회부장 김기설이 1991년 4월 26일 강경대 쇠파이프 치사사건 발생으로 재야 운동권 및 반정부 투쟁분위기가 조성되자 민중을 자극하여 고조된 반 정부 투쟁분위기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하여 분신자살을 계획한 것을 알고 김기설 명의의 유서 2매를 작성하여 분신자살을 방조했다는 것이다. 이런 억지스런 주장을 내놓고 검찰은 유서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필적감정 결과를 근거로 강기훈을 자살방조 혐의와 이적단체 가입, 이적 표현물 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 1992년 7월 24일 대법원에서 징역 3년 판결이 확정되고 복역하게 되고 이를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이라고 한다.

블로그 올드코난 갈대의 지혜와 나무의 의지를 갖고 글을 쓰겠습니다. 



3.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재판 참여 검사 및 판사 명단

당시 법무부장관은 바로 김기춘이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의 부역자중 한명인 김기춘이 법무부 장관이었던 것이다. 김기춘은 도대체 끼어들지 않은 곳이 없다. 김기춘 외 검사 판사 명단은 다음과 같다.

(1) 검사: 총지휘 부장검사 강신욱(1944년 경북 경산), 주임검사 신상규(1949년 강원도 철원), 실무검사 송명석(1956년 서울), 윤석만(1957년 충남 대전)

(2) 1심 판사: 부장판사 노원욱(1936년 평북 선천), 배석판사 정일성(1958년), 이영대(1962년 서울)

(3) 2심판사: 부장판사 임대화(1942년 충남 대덕), 판사 윤석종(1954년 서울), 부구욱(1952년 부산)

(4) 대법원 판사: 대법관 박우동(1934년 경남 함안), 대법관 김상원(1933년 경기 이천), 주심 대법관 박만호(1936년 경북 의성), 대법관 윤영철(1937년 전북 순창)


4. 사건 후 출세한 검사들

사건을 총지휘했던 부장검사 강신욱(1944년 경북 경산)강력부장은 이후 대법관을 지내고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역임했다. ,주임검사 신상규(1949년 강원도 철원) 검사는 동덕여대 이사장이고, 남기춘 검사는박근혜 캠프에서 클린검증 소위원장을 맡았고, 곽상도 검사는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에 참여했고 박근혜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후 현재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윤석만(1957년 충남 대전) 검사는 2016년 대전지역에서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외곽 조직 대전희망포럼 대표를 맡았다. 임철 검사는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는 등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관련된 검사들은 보수정권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사건을 조작하고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는 이들을 우리는 기억해 두자

블로그 올드코난 갈대의 지혜와 나무의 의지를 갖고 글을 쓰겠습니다. 



5. 밝혀진 진실

10년 후인 노무현 정부였던 2005년 경찰청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유서의 필적이 강기훈이 아닌 자살한 김기설의 것이라는 결과를 내놓고 1991년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 감정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2년 뒤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김기설의 유서에 대해 재감정을 의뢰했고 11월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유서는 김기설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발표해 1991년의 감정 결과를 뒤집었다. 이 결과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가가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과와 재심 등의 조처를 할 것을 권고하게 된다.


6. 재심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에 대한 재심은 20년이 지나서 2012년에 열렸다. 그리고 2015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는다. 20년만에 유서 대필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은 것이다. 이후 강기훈은 국가와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사 2명, 국과수 필적 감정인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2017년 7월6일 1심 재판부는 국과수 감정인과 대한민국이 함께 강씨와 가족들에게 6억 86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강기훈을 수사했던 검사들에겐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는데 이유는 강압 수사를 한 사실이 일부 인정되지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다는 것이다.


7. 사건의 의미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과 비유한다. 드레퓌스 사건(L'affaire Dreyfus) 처럼 직접적인 증거 없이 필적 감정과 정황만으로 기소된 인권 침해 사건이었다. 그리고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대한민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분명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명박근혜 9년동안 시대에 역행하기는 했지만, 촛불혁명으로 다시 바로 잡힌 대한민국은 이제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기대해 본다. 


8. 또 김기춘

이 사건에도 김기춘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정말 소름이 끼친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김기춘이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의 실질적인 지휘는 김기춘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의심이 든다. 김기춘은 어디까지 관여를 했을까. 박정희유신시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조작과 억울한 누명을 씌운 사건에 김기춘이 연관된 경우가 많다. 이는 김기춘이라는 자가 어떻게 출세를 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뛰어난 머리와 논리를 가장한 거짓으로 국가와 국민을 농락하고 해악을 끼친 김기춘을 단죄하지 않고서는 적폐청산을 할 수 없다. 김기춘은 반드시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 김기춘의 시대를 끝내는 것이야 말로 유신시대를 종식시키는 것이며 이는 시대적인 사명이라고 할 것이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글에 공감하신다면 아래  (공감) 추천 버튼을 눌러 주시고, SNS (트위터, 페이스북)로도 널리 널리 알려 주세요. ★ 글의 오타, 하고픈 말, 그리고 동영상 등이 재생이 안되는 등 문제가 발견 되면 본문 하단에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