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광수 교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살 이유는 우울증이라고 한다. 대학교수이며, 외설작가라는 오명도 썼었던 마광수 교수는 어떤 사람이었나. 정리해 본다. (글 참고:위키백과 및 언론보도 내용)


[마광수 생애]

6.25전쟁중이던 1951년 4월 14일 서울 출생으로 1·4 후퇴 몇 개월 후인 피난 중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종군사진작가로 6.25 전쟁 중 전사하고 홀어머니가 그를 키웠고 국민학교 1학년에 서울에 정착했는데 밑에서 가난하고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서 독서를 좋아했고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1963년 2월 서울 청계초등학교 졸업 대광중학교에 입학 후 졸업 1966년 대광고등학교로 진학 1969년 졸업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는데 대학 생활은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학과내 연극부의 창설을 주도하고 연세 문학회, 교내방송국 PD, 교지 기자, 등으로 활동하는 등 대학생활은 마광수 개인에게 큰 변화가 있던 시기로 보인다. 


1973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곧 대학원에 진학해 대학원 재학 중 한국 최초의 마당극 《양반전》을 각색 연출하고 1975년 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그해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박사 과정에 들어가면서 모교인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강사가 되고 이후 1978년까지 연세대학교, 한양대학교, 강원대학교에서 강사로 강의를 하게 된다. 이 시기 1977년 잡지 ‘현대문학’에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당세풍(當世風)의 결혼, 겁(怯), 장자사(莊子死) 등 여섯 편의 시를 발표하고 박두진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한다.


1977년 2월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1979년부터 1983년까지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다 "윤동주 연구" 논문으로 1983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이 해부터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재직한다. 이 시기는 전두환의 5공 시대로 마광수는 노태우 정권때까지 이들 군부 독재에 굴하지 않았고 당시 한국의 문학의 지나친 교훈성과 위선을 비판하고 풍자하며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부교수를 거쳐 정교수로 재직한다. 


1989년 장편 소설 ‘권태’로 소설계에 데뷔하고,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출간하지만 얼마 뒤 언론의 혹평을 받았고 6개월 뒤 강의가 취소된다. 1992년 장편 ‘즐거운 사라’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1992년 12월 28일 징역살이를 끝내고 석방되었지만 1993년 연세대학교로부터 직위해제된다. 


이에 대해 1993년 초부터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주장하는 문학계와 문화연예계의 비판과 함께 ‘마광수 교수 복직 서명’과 ‘복권운동’이 꾸준히 꾸준히 전개되었다. 군사정권의 몰락과 문민정부 출범 이후 마광수 복권 여론이 일어났고 마광수는 항소해 1995년 6월 16일 대법원은 마광수의 상고심을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지었고 1995년 8월 8일 연세대학교는 마광수 교수를 면직조치한다. 


이후 1998년 다시 교수직에 복직하지만 2000년 6월 연세대학교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논문 실적 등의 문제로 탈락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문학과 동료교수들의 집단따돌림으로 재임용이 거부당했다는 의혹이 있다. 연세대 학생들의 거센 반발로 연세대학교는 임용탈락을 보류하게 된다. 하지만 마광수는 동료교수들에 대한 극심한 배신감으로 인한 외상성 우울증으로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면서 학교에 휴직계를 제출했고 2002년 다시 복직하는데 강의하던 중, 우울증이 악화하여 학기 말에 다시 휴직한다. 2004년 건강을 회복하고 연세대학교에 복직한다. 이후 강의와 저술 그리고 가끔 자신의 소신 발언 등을 해왔던 마광수는 2017년 9월 5일 1시 50분경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보인다.


[올드코난이 생각하는 마광수 평가]

마광수에 대해 대중들의 생각은 대체적으로 외설 작가로 알고 있다. 이는 1992년 발표한 소설 ‘즐거운 사라’ 영향이 매우 큰데, 지금 봐도 내용이 선정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여대생과 대학 교수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비난 받을 소재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내용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교수 사회의 이면을 보자, 최근에도 대학교수가 여대생을 성추행하는 등 교수들의 성범죄가 적지 않게 보도되고 있다. 근데, 이 일이 최근만이 일이었을까? 1992년에도 있었고, 그 이전에도 있었다. 마광수는 자신의 쓴 책을 음란물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더 추한 내면을 갖고 있는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역겨워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광수라는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의 책이 아니라 평소 그의 삶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마광수는 권위와 위선을 매우 싫어했다. 과거 유교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육계를 비판하면서 교육자가 학생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으로 학생들의 인권에 관심이 매우 컸다. 그의 강의를 들었던 제자들이 마광수를 좋아하고 존경했던 것도 이런 점 때문이었다. 


또 주류문학계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해왔고, 심지어는 민중 문학계에도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의 한국의 문학인들은 민중을 부르짖고 민중문학 등을 부르짖으면서도, 실제로는 문장을 구사하는 데 있어서는 (민중적이라기 보다는) 양반문학이 갖는 품위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민중문학인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기를 충고했다. 특히 노동문학이나 민중문학 또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이론 등을 그저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소재거리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 스스로의 삶 자체를 문학관과 일치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며 말로만 민중을 위한다고 외치는 자들과 민중의 문제에 관심조차 없는 대학생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마광수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독재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던 용기있는 지식인이었고 내 편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마광수는 용기와 소신을 갖춘 그리고 공정함을 가지려 애썼던 사람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문학과 문화계의 자유는 마광수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마광수를 비난했던 자들이 오히려 온갖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보수의 탈을 쓰고 권력에 아부했던 지식인들은 마광수를 비난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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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불어 사는 세상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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