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수필 일상

'1박2일' 못 보게 만든 계란 파는 아저씨!

올드코난 2010. 11.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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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못 보게 만든, 애처로운 계란 파는 아저씨!

 

부유층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거주하시는 분들은 잘 모르실 겁니다.

저처럼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단독주택가는 1톤 트럭으로 과일이나 야채를 판매하는 분들도 있지만 리어카 상인도 자주 다닙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리어카로 계란을 싣고 다니며 판매하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평일에는 가끔 아침에 보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 집에 있을 때는 하루에 2~3번 정도 계란 파는 아저씨의 소리가 들립니다.

 

계란이 왔습니다.’

계란 한 판에 4500원입니다.’

 

이 두 마디만을 반복해서 마이크 없이 직접 외치고 다니십니다.

저는 평소 집에서 밥을 잘 안 먹는 편이라 계란을 사 먹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제가 오늘 아저씨에게 처음 계란을 사봤습니다.

 

저는 평소 일요일 저녁은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자격, 12일 두 프로그램을 보면서 일 주일을 마감하며 집에서 편하게 쉬고는 합니다.

이 글을 쓰기 1시간 전에 남자의자격이 막 끝나고 12일 신안 만재도 2편이 막 시작할 때였습니다. 김종민이 낚시를 하고 있고 강호동, 은지원 두 사람은 방에서 낚시는 예능에서 피해야 돼, 재미없어라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습니다.

 

계란이 왔습니다.’

계란 한 판에 4500원입니다.’

 

? 이 시간에?

휴일에는 주로 낮에 오시는 분이 그것도 오늘 오후에 책을 사기 위해 서점으로 향해 가던 그 시간에 한 번 봤는데 또 왔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7시경에 계란파는 아저씨를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근데 오늘따라 아저씨의 목소리가 묘하게 떨림을 알아차렸습니다.

여기 이사 오고 2년 동안 늘 듣던 소리이기에 오늘 달라진 아저씨의 계란이 왔습니다.’의 목소리가 정말 처량하게 들렸습니다.

특히 제가 사는 동네는 조용하고 집들이 옹기 종기 붙은 서민 단독주택단지여서 저녁이나 밤에는 소리가 아주 잘 들리는 편입니다. (너무 잘 들려 탈입니다.)

 

처음에는 12일 시청 때문에 무시 하려 했습니다.

한참 재미있었거든요.

근데 마침 건너 집 2층에서 전라도 아줌마가 내려와 계란 한 판을 사시더군요.

그 아줌마 남편은 가끔 아침에 만나는 데 야간에 건물 청소를 하시는 분입니다.

사람 좋고 친절하신 분이기에 평소 가끔 인사를 나누고는 합니다.

 

그 아줌마가 계란을 사러 내려갔는데 이때부터 12일 보다는 그분들에게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바로 어제 토요일 저녁, 지난 주 이마트피자문제로 속을 앓던 친구의 선배와 다시 만나 이마트 피자에 대한 분노의 대화를 나누었기에 왠지 신경이 쓰였던 겁니다.
그리고 짐작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친구의 선배가 하던 말 중 대형마트에서 계란 한 판에 3,700원에 판다는 말이 문득 생각난 겁니다.

창문을 열었습니다.

 

계란 많이 못 팔았네~’

‘…’

아줌마 말에 아저씨는 말이 없었습니다.

 

얼마죠?’

‘4,500원인데, 100원 깎아드릴게요

아녜요, 많이 팔아요

 

계란 한 판을 구입하신 아줌마는 집으로 올라가고 쌀쌀한 날씨 탓에 가벼운 재채기를 하며 계란 팔이 아저씨는 다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계란이 왔습니다.’

계란 한 판에 4500원입니다.’

 

TV에서는 12야식배 앞잡이 퀴즈가 재미있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강호동'이 문제를 내고 '이수근'이 마침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문제를 맞출 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점퍼를 걸치고,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여전히 아저씨는 계란이 왔습니다.’를 외치고 날씨 탓도 있지만 일요일 저녁시간이라 저녁식사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저씨 계란 한 판 주세요

 

그리고 리어카를 봤는데, 거의 가득차 있더군요.

몇 달 전 토요일 저녁에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반 이상이 팔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근데 오늘은 팔리지가 않았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니 4500원과 3700원, 800원 차이가 납니다. 800원 차이가 정말 무섭군요.)

 

많이 못 파셨네요?’

‘…’

표정도 어둡고 말도 없으시더군요.

만원을 꺼내 아저씨께 드렸습니다.

잔돈을 거슬러 줄려고 할 때

 

아저씨 두 판 살게요

 

그때 고개를 들고 저를 보셨습니다.
2년 만에 처음 제대로 본 아저씨의 얼굴은 삶에 찌들었지만 인상은 유재석 처럼 편했습니다. 그리고 아저씨의
옅은 미소가 저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다시 한 번 물어봤습니다.

많이 못 팔았네요, 많이 힘드시죠?’

네 못 팔았어요


짧고 낮은 그리고 왠지 오래가는 아저씨의 대답이었습니다. 

1,000원을 거슬러 주실 때, 저는 받지 않으려 했지만 그냥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쓸쓸히 리어카를 끌고 가시면서 다시 반복해서 외치셨습니다.

 

계란이 왔습니다.’

계란 한 판에 4,500원입니다.’

 
집에 왔더니 아직 '1박2일'이 한참 나오고 있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더군요.
오늘따라 강호동, 이승기, 이수근, 은지원, 김종민 다섯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자꾸 계란팔이 아저씨만 보이는 군요.
텔레비젼을 꺼 버렸습니다.
이번 주 1박2일 리뷰는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평소 아침에 빵과 우유로 간단히 끼니를 때웁니다.

이 글을 다 쓴 후 간만에 계란을 삶을 생각입니다.

이번 주는 아침에 빵 대신 삶은 달걀을 먹을 생각입니다.
텔레비젼을 껐더니 정말 조용하군요. 

아, 지금 열린 창문 너머로 나즈막하게 다시 들리는 군요.

계란이 왔습니다...’

한 판 더 샀어야 했습니다.

(막 사온 달걀, 삶기 전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저씨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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