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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랭보의 시집 - 지옥에서 보낸 한 철 中 서시, 랭보 소개

올드코난 2010. 6. 3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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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Jean Nicolas Arthur Rimbaud,

 

지옥에서의 한 계절  Une Saison en Enfer

中  서시  Jadis, si je me souviens bien


서시(序詩)

 

 

돌이켜 생각하면 지난날,  나의 인생은  향연이었다. 잔치에는

모든 마음이 열리고 온갖 술들이 흘렀다.

 어느 저녁 나는 미()를 내 무릎에 앉혔다. - 그러고 보니 못

마땅한 것임을 알았다. -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

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

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뛰었다.

 나는 죽어가면서 그들의  총자루를 물어뜯으려고 사형집행인을

불렀다. 나는 피와 모래에 범벅이  되어 죽기 위해 재앙을 불렀

.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 팍 쓰러졌다. 나는

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대를 잘 속여 넘겼다.

 봄은 나를 향해 백지처럼 무시무시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소리를 낼  찰나에, 나는 옛날의 축

제를 다시 열어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자애(慈愛)가 그 열쇠다 - 그런 생각을 하는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보다.

 "너는 잔인한 놈으로  남을리라…" 따위의  말을, 그토록 멋진

양비귀꽃을 나에게 씌어준 악마가 다시 소리친다. ", 모든 욕

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罪宗)을 짊어지고 죽으라."

 !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그리고  하찮은 몇가지 뒤늦은 비

겁한 짓을 기다리며, 글쟁이에게서 교훈적이며 묘사적인 능력의

결핍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 나의  저주받은 자의 수첩에서 보

기 흉한 몇 장을 발췌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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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소개

(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10 20 – 189111 10) 국적 프랑스, 시인이다.

 

아르덴 주의 샤를빌(지금의 샤를빌메지에르)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보병 대위이고 모친은 지주의 딸이었다. 전쟁과 반란 등으로 시국이 소란한 중에서도 많은 책을 읽고 썼다. 학창시절에는 뛰어난 모범생이었으나, 차차 반항적으로 되었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방랑도 하게 되어 16세로 학업을 포기한다. 이 전후에 쓴 여러 시에는 그의 그리스도교나 부르주아 도덕에 대한 과격한 혐오감이 가득 차 있다. 1871 5월에 유명한 '보는 자(Voyant=천리안이라는 뜻)의 설()'(그가 시인에게 이 자격을 우선 요구한 것은, 시인은 우주의 모든 것을 투시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을 제창하여 이 새로운 문학적 실험에 들어갔다.

얼마 뒤 《주정선》을 쓰고서는 베를렌을 만나려고 파리로 나온다. 두 사람은 뜻이 맞아 여러 곳을 방랑하면서 파멸적인 생활을 보냈다. 브뤼셀의 권총 저격사건으로 두 사람은 헤어진다. 2년간의 이상한 체험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 훌륭하게 정착되어 있다. 이때부터 그는 문학의 열의가 차츰 식어 실제적인 직업을 구하고자 분주하게 다닌 한편 환상적인 《일루미나 시옹》(1886) 산문은 대부분 이 시기에 썼다고 추정된다. 이 산문 시집은 《지옥의 계절》과 함께 프랑스 산문시의 최고봉을 이룬다고 하지만, 후자는 거친 그림자를 숨기고 그의 상상력에 의하여 해체된 현실이 보다 높은 차원의 시적 현실에 다시 구축되고 있다. 이미지의 풍요로움과 신선함은 다른 시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그는 예술적 자유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1875년 문학을 단념하고 유럽 각지를 유랑하다가 1880년경 아프리카로 건너가더니 상인·대상들과 함께 돌아다니다가 다리의 종기가 덧나 프랑스 마르세유 병원에서 한쪽 다리를 자르고 몇 달 후 숨졌다. 조숙한 천재 시인 랭보의 영향은 상징주의와 쉬르레알리즘을 뚫어서 현대시에도 파급하여 지금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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