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시

시) 시인 백기만 作 청개구리, 은행나무 그늘

올드코난 2010. 7. 1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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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청개구리는 장마 때에 운다. 차디찬 비 맞은 나뭇잎에서 하늘을 원망하듯

치어다보며 목이 터지도록 소리쳐 운다.

 

  청개구리는 불효한 자식이었다. 어미의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어미 청개구리가 <오늘은 산에 가서 놀아라!> 하면 그는 물에 가서 놀았고,

, <물에 가서 놀아라> 하면 그는 기어이 산으로 갔었느리라.

 

  알뜰하게 애태우던 어미 청개구리가 이 세상을 다 살고 떠나려 할 때,

그의 시체를 산에 묻어 주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모로만 가는 자식의

머리를 만지며 <내가 죽거든 강가에 묻어다고!> 하였다.

 

  청개구리는 어미의 죽음을 보았을 때 비로소 천지가 아득하였다.

그제서야 어미의 생전에 한 번도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 뼈 아프게

뉘우쳐졌다.

 

  청개구리는 조그만 가슴에 슬픔을 안고, 어미의 마지막 부탁을 쫓아 물

맑은 강가에 시체를 묻고, 무덤 위에 쓰러져 발버둥치며 통곡하였다.

 

  그 후로 장마비가 올 때마다 어미의 무덤을 생각하였다. 싯벌건 황토물이

넘어 원수의 황토물이 넘어 어미의 시체를 띄워갈까 염려이다.

 

  그러므로 청개구리는 장마 때에 운다. 어미의 무덤을 생각하고는 먹을

줄도 모르고 자지도 않고 슬프게 슬프게 목놓아 운다.

 

 

     은행나무 그늘

 

  훌륭한 그이가 우리집을 찾아왔을 때

 

  이상하게도 두 뺨이 타오르고 가슴은 두근거렸어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바느질만 하였어요.

  훌륭한 그이가 우리집을 떠날 때에도

  여전히 그저 바느질만 하였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이에게 선물하였는지 아십니까?

 

  나는 그이가 돌아간 뒤에 뜰 앞 은행나무 그늘에서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노래를 불렀어요.

  우리 집 작은 고양이는 봄볕을 흠뻑 안고 나무가리 옆에 앉아

  눈을 반만 감고 내 노래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내 노래가 무엇을 말하였는지 누가 아시리까?

 

  저녁이 되어 그리운 붉은 등불이 많은 꿈을 가지고 왔을 때

  어머니는 젖먹이를 잠재려 자장가를 부르며 아버지를 기다리시는데

  나는 어머니 방에 있는 조그만 내 책상에 고달픈 몸을 실리고 뜻도 없는

책을 보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 책에서 보고 있었는지 모르시리다.

 

  어머니, 나는 꿈에 그이를, 그이를 보았어요.

  흰 옷 입고 초록 띠가 드리운 성자 같은 그리운 그이를 보았어요.

  그 흰 옷과 초록 띠가 어떻게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누가 아시리까?

  오늘도 은헹나무 그늘에는 가는 노래가 떠돕니다.

  고양이는 나무 가리 옆에서 어제같이 조을고요.

  하지만 그 노래는 늦은 봄 바람처럼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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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만. (1901 - ?. ) 소개 설명

대구출생. 호는 목우. 일본 와세다대학을 중퇴했고 1920 - 25년 사이에 문단에 등단했다. 3.1운동 때 대구 학생운동의 주모자로 투옥, 해방될 때까지 항일운동을 했다. <금성>을 통해 정열적인 시를 발표한 순정 비분파의 시인. 6.25 때 납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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