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밤
밤, 깊은 밤 바람이 뒤설레며
문풍지가 운다.
방, 텅 비인 방안에는
등잔불의 기름 조는 소리뿐...
쥐가 천정을 모조리 써는데
어둠은 아직도 창 밖을 지키고
내 마음은 무거운 근심에 짓눌려
깊이 모를 연못 속에서 자맥질한다.
아아, 기나긴 겨울 밤에
가늘게 떨며 흐느끼는
고달픈 영혼의 울음소리...
별 없는 하늘 밑에 들어 줄 사람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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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1901 - 1936. 서울 출생. 본명은 대섭이다. 1935년 동아일보에 소설 ‘상록수’가 당선하여 문단에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가 남긴 저항시는 해방 후에 출간 되었는데 시에 담긴 고귀한 정신은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집으로는 <그날이 오면>(194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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