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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서북청년회, 더 이상의 침묵은 안된다. (마르틴 뇌밀러 시)

올드코난 2014. 9. 2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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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서북청년회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본다.

서북청년회(西北靑年會) 또는 서북청년단(西北靑年團, 약칭: 서청)는 미군정 당시 조직된 보수 극우단체로 반공주의 우익청년단체였다. 월남한 이북 각 도별 청년단체가 대공투쟁의 능률적인 수행을 한다는 이유로 1946년 8월경부터 대한혁신청년회·함북(咸北)청년회·북선(北鮮)청년회·황해도회(黃海道會)청년부·양호단(養虎團)·평안(平安)청년회 등의 각 대표 사이에 통합협의가 진전되어 1946년 11월 30일 서울 종로 YMCA강당에서 결성대회를 열고 창단하였다. 선우기성(鮮于基聖)이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들 서북청년회가 일으킨 사건들은 1947년 3·1절 기념식 당시 좌우익의 시가행진중 남대문에서 충돌한 남대문충돌사건, 공산주의를 찬양·고취하던 민족예술제를 광복청년회와 합동으로 저지시킨 부산극장사건, 부산좌익청년운동의 본부격인 민주애국청년동맹의 사무실을 습격하여 서북청년회 부산지부의 간판을 건 좌익단체사무실점령사건 및 대북공작 등이다. 이러한 격렬한 반공투쟁은 북한 공산치하의 학정에 못 이겨서 자유를 찾아온 그들의 배경때문이기는 하다.

이 서북청년회의 배후에는 이승만이 있었다는 증거들이 최근 밝혀졌는데 제주4·3평화기념관에는 이승만이 서북청년회 단원을 경찰과 군대에 편입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는 내용도 전시되어 있다. 서북청년회는 이승만의 친위대 역할을 역할을 하면서 4.3사건 제주시민 10%까지 포함한 전국에서 30만 명에 달하는 국민을 좌경분자 처단이라는 명목하에 탄압 혹은 살해했다. 1949년 6월 26일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 역시 서북청년회 재건파 소속이었다.

서북청년회는 1946년 11월 30일부터 가장 규모가 큰 극렬 우익단체로 활동하다 1948년 12월 19일 이후 해체되었다. 서북청년단의 단원 중에서 성공한 사람은 얼마 안되며 한국전쟁 중에 조선인민군에 의해 처형당하거나 점차 사라지고 오랫동안 잊혀지다 2014년 9월 28일 광화문에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대표 배성관) 소속 6명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상세 설명 위키백과 => 서북청년회 참고

 

광화문에 등장한 일베의 영옹 서북청년회, 더 이상의 침묵은 안된다. 마르틴 뇌밀러 목사의 시에 답이 있다.

 

이들 서북청년회가 이날 광화문에 모습을 보인 것은 오늘 9월 28일이 9·28 서울 수복 행사가 있던 날이다. 6.25당시 낙동강까지 밀렸던 국군이 이날 서울을 수복했던 뜻 깊은 날이었다. 바로 이때 서북청년회가 등장했다.

 

60년전 사라졌던 서북청년회의 등장은 일베와는 그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일베는 극우성격을 보이기는 하지만, 사회에서 다소 버림받은 혹은 비뿔어진 성격을 가진 자들이며 일명 관심병 환자라고 할 수 있다. 과격하지만 주로 망언과 폭언을 일삼는다.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를 망칠 정도는 아니다.

 

반면 서북청년회는 폭언이 아니라 실재 폭력을 행사하는 테러 집단이다.

이번에 모습을 보인 서북청년단 단원은 발기인 대여섯 명이 정부이지만, 권력이 받쳐주고 자금만 확보되면, 이들의 숫자가 불어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과연 이들은 어떤자들일까.

서북청년단재건준비위원회 정함철 대변인에 그 답이 있다.

이 자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창립 발기인이었다.

무소속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을 했는데, 정치적으로 낙오가 된 별 볼일 없는 그저 그런 인간이다. 문제는 이런 인간이 권력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되면 결국 폭력을 직접 행사하거나 폭력사태를 유발할 소지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일베가 서북청년단을 존경한다는 말들이 많았었다.

일베 속에 숨어서 때를 기다렸던 서북청년단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농담처럼 넘어갔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현 상황에 계속 침묵만 해서는 안된다.

 

이에 대해 아주 적절한 말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국민들을 반성하게 하고 화해게 만든는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뇌밀러 목사의 글로 정리해 보며 마무리 짓는다.


그들은 가장 먼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다.

그러나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그들은 유태인을 잡아갔다.

그러나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그들은 노동조합원을 잡아갔다.

그러나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그들은 가톨릭교도를 잡아갔다.

그러나 나는 개신교도였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나를 잡아갔다.

그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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