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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중국 162

패공이 된 유방 장자방을 만나다.

진이세(秦二世) 원년인 기원전 209년 진승(陳勝)이 기현(蘄縣)에서 봉기해 진현(陳縣)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는 국호를 장초(張楚)라 하여 옛 초나라의 뒤를 이었음을 주장했는데 진의 폭정에 신음하던 수많은 군현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때 패현 백성들도 소문을 듣고는 현령(縣令)을 죽인 후 유방을 맞아들여 패공(沛公)으로 삼았다. 원래 당시 나이로 보나 직위로 볼 때 유방보다 조건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패현의 관리로 있던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은 현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충분했지만 혹시라도 실패하여 책임 추궁을 당할까봐 두려워했다. 이들은 평소 허풍이 세고 남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유방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지도자로 삼았다. 당시 패현 사람들이 선뜻 유방..

역사/중국 2015.12.19

고대 중국 상나라를 부흥시킨 상 무정(武丁)

고대 중국 상나라를 부흥시킨 상나라의 왕 자소 (子昭) 무정(武丁)에 대해 알아 본다.1.즉위초무정(武丁, BC 1250 - BC 1192)은 상나라의 제23대 왕으로 성은 자(子), 이름은 소(昭), 묘호는 고종(高宗)이다. 소을제(小乙帝)의 아들이자 반경의 손자이다. 태자 시절부터 현인 감반(甘盤)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사기》에는 소을의 아들로써 뒤를 이어 즉위하여 쇠약한 나라를 일으키고자 했지만 자신을 보좌해줄 적임자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그는 3년 동안 부왕의 빈소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서경》무일편) 상태로 정치에 관해서는 모두 총재(塚宰)에게 맡긴 채로 지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을 때는 글로 써서 신하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사람들은 무정이 병에 걸려 벙어리가 되었다고 수군거렸..

역사/중국 2015.12.18

적제(赤帝)의 아들이 백제(白帝)의 아들을 베다.

유방이 정장으로 있을 당시 진나라는 혼란한 시기였다. 당시 정장의 임무는 주로 국가를 대신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고 노역(勞役)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유방이 직무상 부역(賦役)에 종사할 사람들을 데리고 역산(酈山)까지 인솔을 하는데, 당시 뒤숭숭한 사회분위기 속에 도처에서 도망자가 생겼고 유방이 인솔하던 무리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도망쳤다. 이대로 역산에 도착한다면 사람이 불과 몇 명 남지 않을 것이고, 단 한명이라도 도망자가 생기면 인솔 책임자도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 속에서 책임 추궁이 두려워 악착같이 임무를 수행하거나 혹은 자기 목숨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제 살길만을 모색할 것이다. 하지만 유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방은 풍읍(豊邑) 서쪽에 있는 늪지에 이..

역사/중국 2015.12.07

유방의 젊은 시절과 관상

젊은시절 유방은 다른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했고 늘 남에게 베풀기를 즐겨 도량이 넓었다. 평소 원대한 포부를 지녔던 그는 일반 백성들이 하던 힘든 농사일이나 작업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유방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놀기 좋아하는 백수건달이었다. 1. 착실했던 형 유중당시 유방의 모습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유방에게는 유중(劉仲)이란 바로 손위의 형이 있었는데 그는 유방과는 달리 착실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유방은 늘 형과 비교되곤 했다. 태공은 유방에게 "너는 재주가 없어 생업도 꾸려나가지 못할 처지임에도 왜 늘 형처럼 노력하지 않느냐?"라고 탓하곤 했다. 이것이 한에 맺혔던지 유방이 나중에 황제가 된 후 태상황으로 추대된 부친을 축수하며 자신과 형인 유중 중에서 누가 더 큰 업적을 쌓았..

역사/중국 2015.12.07

유방의 탄생 신화와 출신 배경

진나라가 멸망의 수순을 밟고 있을 때 전국 각지에서 수 많은 반란이 일어난다. 여기에 가장 큰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은 항우지만 훗날 전국을 통일한 것은 유방이었다. 1.개요한 태조 고황제 유방(漢 太祖 高皇帝 劉邦, 기원전 247년 ~ 기원전 195년)은 한나라(漢)의 초대 황제(재위 : 기원전 202년 ~ 기원전 195년)이다. 자는 계(季)이다.패현(沛縣)의 정장(亭長)으로 있다가 진(秦)에 맞서는 봉기에 가담하고서 진의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시키고 한때는 관중(關中) 땅을 지배 아래 두었다가 항우(項羽)에 의거해 기원전 206년 서부 한중(漢中)에 좌천되어 한왕(漢王)으로 봉해졌으나 동진하여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토벌하고 한나라를 세웠다. 정식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시호(..

역사/중국 2015.12.07

제후군의 상장군이 된 항우

초나라 군대가 정도에서 대패하고 나라의 기둥이던 항량이 전사하자 회왕(懷王)은 큰 두려움에 휩싸여 도읍인 우이(盱台)를 버리고 팽성으로 합류했다. 이곳에서 회왕은 항우, 여신(呂臣 초나라 장수)의 군대를 통합해 자신이 직접 지휘했다. 여신을 사도(司徒)로 삼고 여신의 부친인 여청(呂靑)을 영윤(令尹)으로 삼았으며 유방을 탕군의 군장(郡長)으로 삼아 무안후(武安侯)에 봉했다. 또 송의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삼고 항우는 노공(魯公)에 봉해 차장(次將)으로 삼았으며 범증을 말장(末將)으로 했다. 여기서 송의가 상장군이 된 데에는 고릉군의 추천이 큰 영향을 끼쳤다. 고릉군이 일찍이 회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송의가 무신군의 군사가 반드시 패할 것이라 말했는데 며칠 후 과연 그의 말대로 무신군의 군대가 패했습니다...

역사/중국 2015.12.06

초회왕(楚懷王) 옹립

이때 최초로 군대를 일으켰던 진왕(陳王) 진승이 진(秦)나라 군대에 패해 사망한 것이 알려지자 항량은 각지의 반란군 장수들을 설현에 불러 모아 대사를 의논했다. 패(沛) 지역에서 군사를 일으켰던 유방(劉邦)도 패공(沛公)의 신분으로 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각지 반란군들은 군사를 일으킨 뚜렷한 목적이나 구호가 없었다. 그보다는 진나라의 폭정에 항거한 민중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군사를 일으켰을 뿐이다. 항량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새나라 창업같은 것은 계획에 없었다. 항연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는데, 범증(范增)도 이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범증은 원래 거소(居鄛 지금의 안휘성 소현)사람으로 당시 나이가 이미 70이었다. 평소 벼슬을 하기보다 집에 머물며..

역사/중국 2015.12.06

반란군의 주력으로 성장한 항량

최초로 반란을 일으켰던 진승(陳勝)은 이때 진왕(陳王)을 칭하고 있었다. 진승의 부하 소평(召平)은 광릉 공격에 나선 진왕(陳王)이 패주해 진(秦)나라 토벌군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두려움에 떨다 진왕의 명령을 사칭하며 항량에게 접근했다. 소평은 항량을 초왕(楚王) 상주국(上柱國)에 임명한 후 서쪽으로 진격해 진(秦)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항량은 소평의 말을 믿고 8천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 서쪽으로 진격했다. 이때 인근 동양현(東陽縣 지금의 강소성 우이현)에서는 영사(令史 현령 휘하의 관리로 감옥 관리를 담당) 진영(陳嬰)이 자의반타의반 현령으로 추대되어 2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항량은 자신의 군대가 규모가 작아 진영의 군대와 연합해 서쪽으로 진격하고자 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진영의 모..

역사/중국 2015.12.06

항우의 등장, 회계 군수가 된 항량

1. 항우의 출신 배경항우(項羽)의 본명은 항적(項籍)이며 하상(下相) 사람으로 자(字)가 우(羽)이다. 항씨 집안은 대대로 초(楚)나라의 명문가로 부귀영화를 누렸다. 항우의 조상이 지금의 하남성 침구현(沈丘縣)에 해당하는 항(項) 지역 제후로 봉해졌기 때문에 성을 항으로 삼았다. 2.조부 항연의 장렬한 최후기원전 223년 진왕(秦王 훗날의 진시황)의 명령을 받은 진(秦)나라 장군 왕전(王翦)이 초나라를 공격해왔다. 이 전투에서 크게 패한 초나라는 형왕(荊王)이 포로가 되었고 멸국의 위기에 처했다. 이때 초나라 장수 항연(項燕)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 창평군을 왕으로 옹립하고 회하(淮河) 남쪽에서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이듬해 재개된 왕전, 몽무(蒙武)의 파상공격에 창평군이 전사하자 항연 역시 자..

역사/중국 2015.12.06

유방과 항우의 성격상 차이점

진나라는 분열되고 사실상 멸망의 길을 가고 있었고, 여기에 많은 반란과 군웅 할거가 시작되고, 최후에는 유방과 항우의 대결로 압축된다. 시대가 낳은 난세의 영웅, 초한지의 주인공인 항우와 유방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고, 우선, 항우와 유방의 성격상 차이점부터 알아 본다.유방과 항우의 등장, 이들의 성격상 차이점. 1.항우 요약항우(項羽, 샹위,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02년)는 중국 진나라 말기의 군인으로, 우는 자이며 이름은 적(籍)이다. 초나라의 명장 항연(項燕)의 후손으로, 처음에는 숙부 항량을 따르며 진왕 자영을 폐위시켜 주살한 후로 서초 패왕(西楚 覇王)에 즉위함으로써 왕이 되었고 초 의제를 섭정으로 도와 통치했으나 그 뒤에 초 의제(서초 의제)가 급사하자 보위를 찬탈, 황제로 등극하였다...

역사/중국 201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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