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는 여러 아들을 두었으나 대부분이 요절했다. 외척 등의 모살을 의심했던 화제는 아들들을 민간에 위탁하여 양육한다. 화제의 사후, 태후 등씨는 맏아들 유승이 지병이 있음을 이유로 삼아 당시 백일이 갓 지난 상제를 즉위시켰다. 실권은 등태후를 비롯한 외척들이 쥐게 되는데 즉위한 이듬해 상제는 병으로 죽어 요절해 상(殤)이라는 시호를 받은 것이다. 상제가 죽자 실권을 쥐고 있던 등태후는 청하왕 유경의 아들 유고를 황제로 옹립하는데 이가 바로 후한 6대 황제 한 효안황제 유호(漢 孝安皇帝 劉祜, 94년 ~ 125년, 재위 106년 ~ 125년)다. 장제(章帝)의 손자로 본래 묘호로 공종(恭宗)이 올려졌지만 초평(初平) 원년(190) 좌중랑장(左中郞將) 채옹(蔡邕)의 건의로 취소되었다. 안제는 13세의 어린 ..